몽어노걸대 ()

몽어노걸대
몽어노걸대
언어·문자
문헌
조선후기 역관들의 몽골어 학습 및 역과 시험용으로 간행한 교재. 몽골어학습서 · 회화책.
정의
조선후기 역관들의 몽골어 학습 및 역과 시험용으로 간행한 교재. 몽골어학습서 · 회화책.
편찬/발간 경위

『통문관지』 권2 및 권8의 기사에 의하면, “과거에 사용되던 책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중에 소실되고, 『신석노걸대』가 1684년(숙종 10)부터 역과시험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그 뒤 1741년(영조 17) 이최대(李最大) 등이 목판으로 간행하였고, 1766년 이억성(李億成)이 수정한 것을 사역원에서 간행하였다. 다시 1790년(정조 14) 방효언(方孝彦)이 『첩해몽어』 및 『몽어유해』와 함께 수정, 간행하였는데, 본서는 사역원에서 간행한 것이다.

서지적 사항

8권 8책. 목판본. 각 면마다 7행으로 각 행에는 왼편에 위구르(Uighur) 몽문자(蒙文字)로 몽골어 문장이 쓰여 있고, 오른편에 한글로 발음이 표시되어 있다. 각 문장 혹은 각 절의 아래에는 국어 역문(譯文)이 붙어 있다. 조선 전기간에 걸쳐 간행된 각종 언해본역학서(諺解本譯學書)의 전형적인 체재를 보여주고 있다.

현존하는 『몽어노걸대』는 규장각도서 소장본과 일본 동양문고 소장의 동양문고본, 리게티(L. Ligeti) 교수 소장본 등 모두 세 가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자세한 내용이 알려진 것은 앞의 두 가지뿐이다.

규장각도서 소장본과 동양문고본은 하나의 판본인 것으로 추정되나, 동양문고본에는 ‘서(序)’가 앞에 붙어 있고, 규장각도서 소장본에는 없는 반면, ‘발문(跋文)’의 위치도 규장각도서 소장본에는 8권의 끝에, 동양문고본에는 권1의 앞에 붙어 있다는 차이가 있다.

1983년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 규장각도서 소장본을 영인하였다.

내용

『세종실록』과 『경국대전』에 몽골어 『노걸대』의 서명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부터 중국어 학습서로 간행된 『노걸대』를 몽골어로 번역하여 사용했던 것이 분명하다.

『몽어노걸대』의 몽골어는 기본적으로 17~18세기에 정착·보급되어 현재까지 중국의 내몽골(內蒙古)에서 사용되는 몽골어 문어(文語, 혹은 고전몽골어)와 유사하지만, 당시의 구어적 요소(口語的要素) 혹은 현대 몽골어와 동일한 형태도 많이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한글로 표기된 발음부호는 몽골문자 표기와 다른 구어체가 상당수 눈에 띈다. 예를 들면, 몽문자로 ‘-yi’로 표기된 대격조사(對格助詞)가 현대몽골어음과 같은 ‘기’로 시종일관 표시되었다.

의의와 평가

동일한 교착어적 성격을 가진 한국어와 몽골어의 대역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근대 국어의 문법 형태와 의미를 기술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또한 『노걸대언해』·『신석노걸대언해』·『중간노걸대언해』·『청어노걸대언해』 등이 광범위한 시대에 걸쳐 존재하기 때문에, 각각의 판본을 비교함으로써 국어의 역사적 변화를 연구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나아가 몽골어 문어 자료로서 알타이 어학의 비교언어학 자료로도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

참고문헌

「몽어노걸대 해제」(이승욱, 영인본 『몽어노걸대』, 1983)
「몽학서연구의 기본문제」(이기문, 『진단학보』 31, 1967)
「몽어노걸대연구」(이기문, 『진단학보』 25·26·27합병호, 1964)
The Study of Foreign Languages in the Yi Dynasty(Song Ki Joong, Journal of Social Sciences and Humanities, vol. 55, 1982)
관련 미디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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