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박통사언해 ()

언어·문자
문헌
조선후기 김창조 등이 『신석박통사』를 풀이하여 1765년에 간판한 언해서.
정의
조선후기 김창조 등이 『신석박통사』를 풀이하여 1765년에 간판한 언해서.
서지적 사항

3권 3책. 서울대학교와 장서각도서 등에 서문과 발문 그리고 간기가 결여된 목판본 『박통사신석언해』가 소장되어 있는데, 『통문관지』의 『신석박통사언해』와 동일한 책으로 보인다.

편찬/발간 경위

『통문관지』 권8 집물조(什物條)에 의하면, 1765년(영조 41) 김창조(金昌祚) 등이 수정한 ‘신석박통사판’과 ‘언해판’을 기영(箕營), 곧 평양에서 간판(刊板)하였다. 서울대학교 소장본이 1985년에 홍문각(弘文閣)에서 영인·출판되었다.

내용

『박통사신석언해』에 수록된 한어문(漢語文)은 『번역박통사』와 『박통사언해』에 수록된 한어문과 상당히 다르다. 『번역박통사』와 『박통사언해』의 한어문은 동일하다.

한어문의 각 한자 아래 한글로 붙여진 두가지 중국음 중 우측음, 즉 통칭 속음(俗音)은 18세기 북경지방 중국어음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서정음』·『중간노걸대언해』 등 18세기에 간행된 다른 한학서들과 함께 당시 북경어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좌측음, 즉 통칭 정음(正音)은 대체로 『홍무정운역훈』과 『사성통해』의 ‘정음’과 일치하고, ‘속음’과 같은 예도 간혹 눈에 띈다. 16∼17세기에 간행된 각종 한학서에 표시된 좌측음들이 『홍무정운역훈』의 ‘속음’인 데 반하여, 『박통사신석언해』를 비롯한 18세기 간행서들의 좌측음은 대체로 ‘정음’이다. 특징적인 세 가지 한자의 좌우측음 표기상황을 시대별로 비교해보면 [표]와 같다.

[표] 시대별 좌 우측음 표기비교

시 대 별 \ 구 분 표 기 예 출 전
생(生) 시(時) 삼(三)
16세기(정음/속음) {{A1055_1}}/숭 씨/{{A1055_2}} 삼/산 사성통해
16·17세기(좌측음/우측음) 숭/ᄉᆞᆼ {{A1055_2}}/스 산/산 번역노결대 번역박통사 노결대언해 박통사언해
18세기(좌측음/우측음) {{A1055_1}}/숭 {{A1055_2}}/스 삼/산 경서정음 박통사신석언해 중간노결대언해
주 : 사성통해 변역노걸대 번역박통사 등 16세기 간행서에는 방점으로 성조가 표시되었으나 여기서는 제외되었다.

언해문은 『박통사언해』에서보다 중국어를 직역한 곳이 많고, 보다 많은 한자어를 사용하였다.

의의와 평가

한글표기법은 18세기 자료의 특성을 대체로 반영한다. 어말자음(語末子音) ㄷ과 ㅅ이 ㅅ으로 통일되었고, 초성의 ㅼ, ㅆ 등이 ㅳ, ㅄ 등과 혼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ㄷ의 구개음화현상이 다수 보인다.

참고문헌

『통문관지(通文館志)』
「박통사신석언해(朴通事新釋諺解)해제」(홍윤표, 『홍문각영인본』, 1985)
「박통사신석언해내(朴通事新釋諺解內) 자음(子音)의 음계」(강신항, 『학술원논문집』 17집,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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