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성을 쌓거나 큰 집을 지을 때 사용하였다.
각목으로 네모난 틀을 만들고 틀의 앞쪽으로 긴 지주(支柱) 구실을 하는 간목(竿木) 둘을 비스듬히 세운 다음, 간목 꼭대기에는 활차를 달고 나무틀의 뒤쪽에는 얼레를 설치하여 동아줄을 얼레와 활차에 연결하고 줄의 반대쪽에 물건을 달아맨 뒤, 얼레를 돌려 줄을 감으면서 물건을 들어 올리도록 한 것이다.
1796년(정조 20) 수원성곽을 쌓을 때에는 두 틀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화성성역의궤』에 의하면 틀의 크기는 세로 15척, 높이 10척이고 간목의 길이가 35척으로, 여덟 사람이 둘로 나뉘어 얼레를 좌우에서 돌려 물건을 올리고, 적당한 높이에 올라가면 줄 갈고리로 끌어서 원하는 자리에 옮긴 다음 다시 얼레를 늦추어 물건을 내리도록 한다고 하였다.
그 뒤 1803년(순조 3) 창덕궁 인정전(仁政殿) 재건공사 때와 1857년(철종 8) 인정전 중수공사 때에도 녹로를 만들어 활용하였다. 인정전 공사 때에는 이것을 다루는 장인을 녹로선격군(轆轤船格軍)이라고 불렀는데, 『(경복궁)영건일기』에 녹로를 조작하는 방법과 뱃사공들이 돛을 매다는 방법이 같다고 하여 녹로는 주로 뱃사공들이 다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간주(竿柱)를 높이 세우고 그 꼭대기에 활차를 달고 동아줄을 걸어 밑에서 한쪽 줄을 잡아당겨 물건을 높이 올리는 것은 오래전부터 깃발을 세우는 일 등에 쓰이던 것인데, 조선 후기에 와서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는 데 그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