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김원룡에 의해 처음 조사가 이루어졌다. 고인돌은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신기리 고암마을에 자리하는데, 총 21기가 장선천 주변의 충적 대지에 분포한다. 당시 시굴한 2기는 탁자식 고인돌로 판단되었고, 이후 1965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정식으로 발굴되었다. 3기 중 A호와 B호는 탁자식 고인돌, C호는 개석식 고인돌으로 판단하였다.
A호의 덮개돌 규모는 장축 3.1m, 단축 1.55m, 두께 0.45m이다. 덮개돌 아래에는 남북 방향의 동서 지석 2매와 파괴된 남 지석 1매가 확인되었다. 동서 지석의 길이는 각각 1.6m, 1.05m이며, 두께는 0.25m, 0.1m이다.
무덤방의 크기는 길이 1.2m, 너비 0.48m, 깊이 0.6m 정도로 복원된다. A호 남쪽에 위치한 B호의 덮개돌은 장축 2.3m, 단축 2.1m, 두께 0.45m 규모이다. 무덤방은 B호와 마찬가지로 남북 방향이다. 지석은 4매 모두 남아 있는데, 동서 장지석의 길이는 각 1.1m 내외이며 두께 0.15m, 남북 단지석의 폭은 0.45m이며, 두께는 0.09m이다.
무덤방의 규모는 길이 1.15m, 너비 0.5m 범위이다. C호의 덮개돌 규모는 장축 4.0m, 단축 2.2m, 두께 1.3m로 고인돌군 중 가장 크다. 전언에 의하면 6 · 25전쟁 시 방공호를 만들면서 하부 구조가 파괴되었으며 덮개돌 아래에는 널돌로 만든 무덤방이 있었다고 한다.
1973년에는 마을도로 개설 시 돌널무덤 1기가 발견되어 국립부여박물관에 의해 조사가 이루어졌다. 무덤방은 지표 0.4m 아래에서 확인된다. 생흙 부분을 굴광하여 무덤구덩이를 조성하였는데, 규모는 길이 2.3m, 너비 1.8m, 깊이 1.15m 정도이다.
중심에는 널돌을 세워 무덤방을 구축하였으며 무덤구덩이와 벽석 사이에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보강하였다. 벽석은 남북 단벽 각 1매, 서 장벽 4매, 동 장벽 1매가 남아 있으며, 서벽 가까이에는 뚜껑돌로 추정되는 크기 1.2m, 너비 0.5m, 두께 0.08m 규모의 널돌 1매가 놓여져 있다.
돌널의 규모는 길이 1.6m, 너비 0.46~0.56m, 높이 0.73m이다. 바닥은 널돌을 이용하여 시설하였다. 유물로는 간돌검 1점과 돌화살촉 15점이 확인되었지만 출토 상황은 알 수 없다. 간돌검은 통자루식이며, 돌화살촉은 대부분 슴베가 있는 형식이지만 버들잎 모양도 1점 확인되었다.
금강 중하류역 일대는 청동기시대 중기의 대표적인 문화인 송국리 유형이 발달한 지역으로,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독널무덤과 같은 이른바 송국리형 묘제가 주로 분포한다. 반면에 고인돌은 일부 지역에서 적은 수만이 확인된다.
논산신기리지석묘는 금강 중하류역 일대에서 가장 많은 수의 고인돌이 분포하는 무덤군으로 3차에 걸친 조사가 시사하듯이 일찍이 학계의 주목을 받아 온 중요 유적이다. 조사된 유구 중 탁자식 고인돌 2기와 돌널무덤 1기는 무덤의 세부 구조와 출토 유물의 형식으로 미루어 보아 청동기시대 중기 이후 축조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