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해협 가운데 대마도가 자리하여 서수도와 동수도로 나뉜다. 서수도의 최대수심은 227m로서 경사가 상대적으로 급하며, 동수도의 수심은 100m 내외로서 폭이 넓고 비교적 완만하다. 대한해협 내의 해수유동은 북동-남서방향의 왕복성 조류와 약 30∼80cm/sec 속도로 북동쪽으로 흐르는 쿠로시오 난류의 지류인 대마난류이다. 이 해역에서의 창조류(flood current)는 남서쪽으로, 낙조류(ebb current)는 북동쪽으로 흐른다.
제2차세계대전 뒤 이승만(李承晩)은 맥아더라인과 평화선을 설정하였고, 1965년에 이르러 한일 양국에 의하여 어업협정이 맺어지고 전관수역과 공동수역이 설정되었다.
대한해협과 이에 연속되는 쓰시마해협(對馬海峽)을 따라서 대마도(對馬島) · 이키도(壹岐島) 등의 섬들이 징검다리처럼 배열되어 있는데, 대한해협은 일찍부터 한 · 일간의 교통로로 이용되어왔다. 한 · 일간의 교류는 삼국시대에 이미 활발하였는데, 특히 백제와 일본 간에는 인적 교류가 매우 많았다.
한편, 대마도를 근거지로 한 왜구들은 우리나라의 해안지방을 빈번히 약탈하였다. 특히, 고려 말 이래 왜구의 침입은 대규모화되어 고려 창왕과 조선 세종 때 그 근거지인 대마도를 정벌하고, 세종 때는 회유책으로 부산포 등 3포를 개항하여 교역을 허락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군수물자를 일본에서 대륙으로 신속히 수송하기 위하여 이 통로를 따라 해저터널의 건설을 계획하기도 하였으며 최근 논의가 부활되고 있다. 하지만 한 · 일 해저터널 건설은 천문학적 비용을 비롯한 경제적인 이유와 양산 단층대와 같은 단층대를 굴착하는 것과 같은 기술적 문제를 차치하고도 가장 큰 걸림돌은 과거사에 따른 역사적 암금의 문제가 남아 있다. 실제 일본측의 시발점으로 알려진 규슈 사가현의 가라쓰시는 임진왜란 당시의 일본의 조선 출병로로 알려져 있다.
해협의 양안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우리나라 남해안측은 복잡한 해안지형을 이용한 김과 조개류의 양식이 성하다. 대륙붕상에는 난류가 흘러 해산물이 풍부하여 남해어장의 일부를 이룬다.
현재 부산과 일본의 시모노세키(下關), 부산과 오사카, 그리고 부산과 하카다 사이에는 정기항로가 개설되어 매일 수차례씩 여객선이 운항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