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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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적도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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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도(德積島)의 옛 이름.
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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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적도(德積島), 인물도(仁勿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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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도(德積島)의 옛 이름.
내용

본래 백제의 옛 땅으로서 일명 인물도(仁勿島)라고도 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수군의 진(鎭)으로서 이곳에 만호(萬戶) 또는 첨사(僉使)를 두기도 하였다.

신라 태종무열왕 때 나당연합에 의하여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이 천리에 뻗친 전선을 이끌고 서해를 건너왔을 때, 신라에서 태자 법민(法敏)을 보내어 전선 100척을 거느리고 나아가 영접한 곳이 바로 이곳으로서, 지금의 덕적면 소야도(蘇爺島)이다.

663년(문무왕 3) 백제 패망 후 부흥운동을 일으킨 복신(福信)의 세력이 강해지자 당나라에서 다시 군사 40만을 증파하였다. 이때 증원군은 덕물도를 거쳐서 웅진(熊津)으로 진군하였다. ‘물’은 수(水)를 뜻하므로 덕물도는 ‘물이 많은 섬’, 또는 ‘물에 싸인 섬’ 등으로 풀이되고 있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대동지지(大東地志)』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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