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원래 대사성을 지낸 바 있는 서정공(西亭公) 박문현(朴文鉉)의 주택으로 1778년(정조 2)에 건립하였으나, 19세기 중반에 도곡공(陶谷公) 박종우(朴宗佑)의 재실(齋室 : 유생들이 공부하는 집)로 사용하면서 그의 호를 따 당호(堂號)를 도곡재(陶谷齋)라 하였다.
현재 재실 경내(境內)에는 대문채 · 사랑채 · 안채 · 중문간채 · 고방채 등 5동의 건물이 자리잡고 있으나, 도곡재라 불리는 건물은 사랑채만을 지칭한다. 사랑채는 정면 4칸 규모의 一자형 건물로 지붕은 팔작기와지붕이다.
평면은 사랑마루 · 사랑방 · 골방이 연이어진 일반적인 사랑채 건물이었으나, 후대(後代)에 와서 사랑마루 좌측에 1칸 규모의 머리퇴를 증설하여 5칸 규모가 되었다. 사랑마루와 사랑방의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간(退間)을 두었으며, 골방은 퇴간까지 내밀고 골방 뒤에는 부엌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