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단층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 1984년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김종걸(金宗傑)이 1650년(효종 원년)에 건립하여 당대의 유림들과 교유하며 시사공론(時事公論)과 시영(詩詠)을 즐기던 정자이다.
정자의 전면에는 방형(方形)의 연지(蓮池)를 조성하였는데 주위의 바위와 노송들이 정자와 좋은 조화를 이루어 있어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뛰어난 조경미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평면은 1칸의 우물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면의 반칸은 누마루로 꾸미고, 주위에는 계자각 난간((鷄子脚 欄干)을 둘렀다. 초석(礎石)은 자연석 주초(柱礎)를 사용하였는데, 후면에는 별도의 주초를 놓지 않고 자연암반 위에 바로 기둥을 세웠다.
기둥은 전면에만 원기둥을 사용하였으며, 5량가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간결한 모습을 갖고 있다. 좌우 담 중간에는 작은 출입문이 각각 1개씩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