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이광사(李匡師)와 그의 아들 영익(令翊)이 지은 악부시. 이광사의 문집 ≪원교집 圓嶠集≫에 전한다. 원래 이광사가 <해동악부 海東樂府>라 하여 30수를 지었는데, 여기에 그의 아들이 화답한 시를 합한 것이다.
그러나 각 시마다 화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과 다른 작품 말미에만 붙였기에 몇 수 되지 않는다. 형식은 장단구(長短句)를 취하면서도 삼언 내지 칠언까지 다양하다.
설씨녀(薛氏女)를 소재로 한 <파경합 破鏡合>처럼 오언 280구 1,400자나 되는 장편이 있는가 하면 24자밖에 안 되는 <두문동 杜門洞>도 있다. 이 작품은 소론 명문 출신인 이광사가, 영조 즉위와 함께 소론이 축출당할 때 부친과 함께 귀양가서 지은 것이다.
우리 나라의 역사를 읊은 영사악부(詠史樂府)에서 단군 이래부터 고려말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삼국시대가 대부분이고 고려의 역사는 몇 수뿐이다. 왕조의 시작이나 국난극복에 작자의 시각이 맞추어진듯하며, 특히 건국신화들을 시대순으로 읊었다.
조선조의 건국에 관해서는 이방원(李芳遠)의 <하여가 何如歌>를 소재로 한 <백사가 百死歌>가 있을 뿐이고 고려 유민의 저항을 다룬 <두문동>으로 작품을 마무리하고 있다.
작자의 예술적 취향에 따라 예스럽고 우아한 표현을 쓰고 있는 이 작품은 별달리 두드러진 문제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이 고려유민의 저항으로 끝마무리를 했다는 점에서 유배중인 작가의 저항정신이 투영되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