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익원은 경상남도 거제출신으로 1943년 5월 이 극단을 조직하였는데 박귀희(朴貴姬)를 단장으로 하여 임방울(林芳蔚)·강남중·정광수(丁珖秀)·김준섭(金俊燮)·장영찬(張泳瓚)·한일섭(韓一燮)·김준옥(金俊玉)·박녹주(朴綠珠)·박초월(朴初月)·조농옥(曺弄玉)·박의숙·한애순(韓愛順)·성우향(成又香)·임추월·오양금·한영숙(韓英淑, 무용)·한영순(무용)으로 구성되었다.
초창기는 명인명창대회 형식으로 공연하였으나 1944년부터 창극을 주로 공연하였다. 주요공연작품은 「흥부와 놀부」·「춘향전」 등 판소리를 모체로 창극화한 것과 「일목장군」·「김유신전」 등 역사에서 소재를 얻어 새로이 창극화한 창작창극이었다.
창작창극은 신파조(新派調)에 창을 혼합한 형식으로 아직 창극다운 형식에 접근하지 못하였던 당시로서는 새로운 형식의 창극이라 하였고, 그 중에서도 김아부(金亞夫) 작·연출의 「일목장군」은 의욕적인 창작창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화제가 된 것은 박귀희가 남자역으로 분장하여 남자주인공역을 한 것으로, 「추풍감별곡」에서 단 한번 여자역으로 출연하였을 뿐 그 밖의 공연은 전부 남자주인공역으로 출연하였다.
이처럼 창극에서 여자가 남자역으로 출연한 것은 박귀희가 시초라 할 수 있다. 이 극단은 서울공연이 끝나면 계속 지방 각 도시를 순회 공연하였으나, 재정난으로 1946년 8월 정해영에게 단체를 인계하였다. 그는 새로 개편하여 공연활동을 계속하였으나, 역시 재정난으로 인수한 지 1년 만에 해산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