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8책이던 안공신의 유고 가운데 문집 6책은 소실되고, 1913년 안공신의 12세손 안교오(安敎五)·안교주(安敎胄) 등이 남은 시집만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이만규(李晩煃)와 김성근(金聲根)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김세락(金世洛)의 발문과 13세손 안창호(安昌鎬)의 후지(後識)가 있다.
4권 2책. 목판본.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1∼3에 세계도와 시 110여수, 유묵(遺墨) 6편, 권4에 증유(贈遺) 5수, 묘소도(墓所圖)·행장·묘지명·묘갈명·유사 및 잡저 4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1에는 어제시(御製詩)인 「군신경회배율(君臣慶會排律)」이나 「황매시우(黃梅時雨)」·「동교영춘(東郊迎春)」 등과 학문의 진흥을 주제로 한 장시 「소수서원배율(紹修書院排律)」과 「문남구함성감부(聞南寇陷城感賦)」 등의 작품이 실려 있다.
권 2·3에는 저자가 강원도에 권농관과 진휼관으로 파견되었을 때에 여가를 이용해 관동의 명승을 두루 유람하며 지은 기행시가 70여수 실려 있다. 담박하면서도 고졸한 시상(詩想)이 돋보인다.
유묵 가운데 회헌사(晦軒祠)와 백운동서원의 창설에 참여하면서 유경장(柳敬長)·황준량(黃俊良) 등 5인과 함께 연명으로 지은 「순흥문성공묘백운서원사문입(順興文成公廟白雲書院斯文立議)」는 우리나라 서원의 초기 형태를 연구하는 데 참고 자료가 된다.
그밖에 주세붕(周世鵬)이 편집한 『죽계지(竹溪誌)』와 『순흥읍지(順興邑誌)』 가운데에서 저자의 사적을 채록한 글과, 만년에 저자가 고향에 건립했던 우우정(友于亭)을 1893년(고종 30)에 후손들이 중수하면서 쓴 중수기와 상량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