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권 7책. 활자본. 1590년 (선조 23) 선조의 명에 따라 교정청(校正廳)에서 간행한 책으로, 도산서원(陶山書院)에 소장되어 있는 원간본에는 “만력십팔년칠월일(萬曆十八年七月日)”의 내사기(內賜記)가 있다.
한문을 앞에 싣고 이어서 언해문을 다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방점(傍點)이 찍혀 있고 ㅿ과 ㆁ도 쓰이고 있으며, 원문과 언해문의 한자에는 현실한자음(現實漢字音)에 따라 표기된 한자음도 달려 있다.
맹자언해는 조선시대에 여러 번 간행되어 이본이 많다. ‘만력사십년십이월일(萬曆四十年十二月日)’,‘숭정사년윤십일월일(崇禎四年閏十一月日)’,‘강희삼십이년구월십사일(康熙三十二年九月十四日)’의 내사기가 있는 책이 있는데 이들은 각각 1612년(광해군 4)·1631년(인조 9)·1693년(숙종 19)에 간행된 것들이다.
그리고 ‘경진신간내각장판(庚辰新刊內閣藏板)’, ‘갑신신간영영장판(甲申新刊嶺營藏板)’, ‘임술계춘영영중간(壬戌季春嶺營重刊)’의 간기를 가진 책들이 있는데 이들은 각각 1820년(순조 20)·1824년·1862년(철종 13)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위의 이본들은 10행 19자본·10행 17자본·12행 23자본으로 구별된다. 원간본이 활자본인 데 비해 숙종조본은 원종목활자본(元宗木活字本)이고 나머지는 목판본이다. 이밖에 정조연간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정유활자본(丁酉活字本)이 있다.
표기상으로 볼 때 원간본이 방점표기 및 ㅿ, ᄠᅳᆷ을 사용하고 있는 데 비해, 광해조본·인조조본·숙종조본은 방점이 표기되지 않고 ㅿ과 ᄠᅳᆷ이 혼용되고 있으며, 그 이후의 간본들은 ㅿ과 ᄠᅳᆷ까지도 전면적으로 폐기하고 있다.
그러나 문법상의 차이를 보이는 표기나, 문체상의 차이는 전혀 보이지 않으므로 이본의 비교를 통한 문법사(文法史)의 연구에는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문체상의 차이를 보이는, 전혀 다른 언해는 『맹자율곡언해(孟子栗谷諺解)』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원문의 한자를 언해문에 그대로 써서 어휘상의 차이도 보인다.
그러나 원문에 달린 토는 다른 맹자언해와 동일하다. 원간본인 도산서원본은 다른 원간본 사서언해와 함께 방점을 표기한 마지막 문헌이며, 중세국어와 근대국어의 분기점에서 일어나는 제반 언어사실이 반영된 문헌이라는 점에서 국어사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예컨대 ㅿ도 점차 ㅇ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이며(ᄆᆞᄅᆡ), 공동격 조사 ‘과’가 ‘괘·과ᄂᆞᆫ·과ᄅᆞᆯ·과애’ 등으로 이중곡용(二重曲用)하는 예가 거의 보이지 않으며, ‘ㄹ’ 뒤에서 나는 된소리의 표기가 다양하다(滕更이 門에 이실 쩨 禮ᄒᆞᆯ 빠애 이○○호ᄃᆡ, 十三 36a).
도산서원본은 1974년 한양대학교 국학연구원에서 영인하였고, 이를 다시 1976년 대제각에서 영인하였다. 내각장판본도 대제각에서 영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