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1년(경종 1) 최석정의 문인 조태억(趙泰億)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조태억의 서문이 있다.
34권 17책. 목판본. 국립중앙도서관·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 등에 있다.
권1∼6은 시, 권7은 부(賦)와 서인(序引), 권8은 서(序), 권9는 기와 변려(騈儷), 권10은 제문, 권11은 잠·명·찬(贊)·잡저, 권12는 제(題)와 발(跋), 권13은 서독(書牘), 권14∼20은 소·차(箚)·수의(收議), 권21∼28은 비명·묘지, 권29·30은 묘표와 행장, 권31∼34는 시장(諡狀)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문집에서 많은 양을 차지한다. 시체별(詩體別)로 수록하지 않고 저자의 생애에 따라 초미록(焦尾錄: 젊은 시절)·중광록(重光錄: 과거합격시절)·문형록(文衡錄: 대제학 시절) 등으로 제목을 붙여 각 체를 수록하였다. 정감(情感)보다 사유(思惟)를 함축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부에는 4수가 수록되어 있다. 서인에는 경서에 대한 것이 여러 편이며, 서양건상곤여도(西洋乾象坤輿圖) 등 서양 문물에 관한 것도 있다.
기는 10편이며, 병려는 교서와 반교문 등이다. 제문에는 조부인 최명길(崔鳴吉), 김석주(金錫胄)와 이안눌(李安訥) 등 당시 명사의 것이 많다. 잠에는 「시아사덕잠(示兒四德箴)」·「계녀잠(戒女箴)」 등 아동과 자녀 교육에 관한 것이 포함되어 있고, 명에는 「좌우명」 등 수신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서(書)에는 남구만(南九萬)·박세채(朴世采)·윤증(尹拯)·박세당(朴世堂)·이광좌(李光佐)·조태억 등 당시 서인 계열로 뒤에 소론이 된 반송시열계열(反宋時烈系列)과 주고받은 것이 많다.
소차는 명신다운 저자의 면모를 보여주듯이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정치와 관계되는 내용은 물론이며, 「진시무십조차(陳時務十條箚)」·「사조정폐차(四條政弊箚)」 등은 토지와 조세제도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당시의 폐단을 개선하라는 요구 등으로 주목되는 내용들이다. 또한, 주화(主和)와 척화(斥和)를 논단하고 옥사(獄事)를 규명하게 하는 당시의 정치 현안들도 다루고 있다. 묘도문에는 최욱(崔昱) 등 명사의 것과 함께 승려와 영장(營將) 등 신분이 낮은 인사의 것도 많다.
조태억은 서문에서 “경전에 힘쓰고 제자(諸子)와 잡서(雜書)까지 섭렵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서(書)·수(數)·역상(曆象)의 학에도 밝아 전문가도 미치지 못했다.”고 썼는데, 이 책의 내용은 바로 이와 같은 그의 학문의 경지를 나타낸다. 그는 양명학의 줄기를 이어 정제두(鄭齊斗)와 함께 강화학파의 비조로 일컬어지는데, 이 책에는 부분적인 것 외에 정제두가 양명학에 심취한 것을 나무라는 듯한 내용 등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