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서촉(西蜀). 자는 치회(稚晦), 호는 모암(慕庵). 개성 출신. 아버지는 진사 명세겸(明世謙)이다.
1573년(선조 6) 진사시에 합격하고 1576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벼슬을 지냈다.
1592년 평택현감으로 나갔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휘하의 정예병 수백 인을 거느리고 출전, 조헌(趙憲) 등이 이끄는 의병과 합세하여 청주에서 왜적을 크게 무찌르고 이어 금산에서 역전하다가 조헌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부인 현씨(玄氏)도 주위 사람들이 피신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오히려 성을 내고 말하기를 “신하는 임금을 위하여 죽고 부인은 남편을 따라 죽는 것이 직분이거늘 어찌 피신하랴.”하고 역시 집을 나와 용전하다가 순절하였다. 뒤에 선조는 이를 가상히 여겨 그의 자손을 등용하라는 명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