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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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두리실나이 / 베짜는 모습
성주 두리실나이 / 베짜는 모습
의생활
개념
너비가 좁은 평직의 견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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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너비가 좁은 평직의 견직물.
내용

보통 명주는 연견직물을 말하는데 생견직물인 생명주도 있다. 문헌 기록에 의하면 견의 평직물은 삼국시대에는 ‘주’로 명명되었으며, 고려시대에는 주 또는 면주(綿紬)로 명명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주·토주(吐紬, 土紬)·정주(鼎紬)·수주(水紬)·분주(粉紬)·반주(班紬) 또는 영흥주(永興紬)·희천주(熙川紬)·상주주(尙州紬)·성천주(成川紬) 등 제직되는 지역명이 붙어 명명되었음이 나타난다.

1803년에 중국에 보낸 직물품목 중에 백병주·홍명주 등의 주가 사행기록(使行記錄)인 ≪계산기정 薊山紀程≫에 기록되어 있고 ≪규합총서 閨閤叢書≫에는 성천(成川)·명천(明川)·덕천(德川)·영동(永同)·회양(淮陽)의 명주에 대한 기록이 있다.

1915년 요시나가(吉永彦太郎)에 의하여 발표된 우리 나라의 직물명에 의하면 명주·백명주·색명주·생명주로 명명된 주가 있었음이 나타난다. 또, 분주·내주(內紬)·토주·영변주·길군주·희천주·태천주·성천주·포천주·토산주·이천주·철원주·춘천주·영흥주·상주주·면주 등으로 명명된 주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 주가 모두 명주라고 설명되어 있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사용되었던 각종 주가 모두 명주와 같은 것임이 나타난다. 생삼팔주(生三八紬)·백삼팔주·색삼팔주 등의 기록도 있는데 이것은 지나(중국)산의 명주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와 같이 주는 제직 방법과 제직된 상태, 산지·원료 등에 의하여 각기 다른 명칭이 있었는데 근년에 이르러 ‘명주’로 통합, 명명된 것이다. 명주는 뽕나무를 재배하고 누에를 치는 잠상(蠶桑)에서부터 시작된다. 명주실은 누에고치를 끓는 물에 넣어 실 끝을 풀어서 자새·왕챙이 등의 기구로 실켜기를 하여 제사(製絲)한 것이다.

이 명주실로 날실을 날고 베매기로 날실에 풀을 먹여 도투마리에 감아 베틀에 올려 잉아실을 걸고 날실 끝을 말코에 매면 명주짜기 준비가 모두 끝난다. 직녀가 베틀앉을깨에 앉아 부티를 허리에 걸고 베틀신을 신고 발을 앞뒤로 밀고 당기며 날실을 개구(開口)시켜 북 속의 씨실꾸리에서 씨실을 넣고 바디로 치면 명주가 짜이게 된다.

짜여진 명주는 베틀에서 떼어내어 필로 묶는다. 명주의 너비는 35∼40㎝ 내외이며, 한 필의 길이는 20m정도이다. 또 명주의 품질은 승수로서 가름되는데 15승이면 극상명주가 된다. 명주로 옷을 지을 때는 물에 담가 풀을 다 뽑고 그늘에 널어 물기를 말려 다시 풀을 한다.

이것을 그늘에서 물기가 가실 정도만 말려, 다시 거두어 손으로 만지고 발로 밟아, 다듬이질·홍두깨질을 하여, 다리미로 다려서 사용한다. 풀은 녹말풀 등을 사용하며 실백을 갈아넣어 실백향이 은은히 풍기게도 하였다. 이와 같이, 예전에는 전국 각지의 가정에서 재래식 베틀로 명주를 짜서 옷감으로 자급자족하였다.

조선 말기 이후 근년까지는 개량식 직기로 대량 제직하게 됨에 따라 재래식 명주짜기는 급격히 쇠퇴하게 되었다. 더구나 오늘날에는 화려한 견직물에 밀려 명주의 수요가 줄어 간신히 그 명맥만 이어오고 있다. 그리하여 명주의 제직 기술에 대한 전통을 잇기 위하여 1988년 성주 두리실의 명주짜기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으며, 기능보유자로 조옥이(曺玉伊)를 지정하였다.

참고문헌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75(유희경 외, 문화재관리국,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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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민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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