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이시수의 아들 이정흠(李庭欽)과 손자 이중기(李中基)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말에 권상규(權相圭)의 후서(後序)와 이중기의 발문이 있다.
12권 6책. 석인본. 성암고서박물관(誠菴古書博物館)과 고려대학교 도서관·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2에 시 182수, 권3∼8에 소(疏) 1편, 서(書) 53편, 잡저 18편, 서(書) 7편, 권9∼11에 기(記)·발(跋) 각 7편, 자사(字辭) 4편, 찬(贊)·명(銘) 각 1편, 상량문 2편, 축문 3편, 제문 20편, 애사 3편, 묘지명·묘표·광기(壙記)·광지(壙誌) 각 1편, 행장 7편, 유사 5편, 권12에 부록으로 만사·제문·행장·묘갈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차운시(次韻詩), 학문적 내용을 주제로 한 시, 정필규(鄭必奎)·권창섭(權昌燮) 등이 포함된 만시(輓詩)와, 서정을 바탕으로 정신적 내면 세계를 읊은 시 등 다양한 제재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소의 「청갈암선생환사직첩소(請葛庵先生還賜職牒疏)」는 도내(道內) 유생을 대표해 지은 것이다. 숙종 때의 중신(重臣)이었던 이현일(李玄逸)의 직첩을 되돌려줄 것을 청원하는 내용이다.
서(書)와 별지(別紙), 그리고 문목(問目) 등은 주로 김희주(金熙周)·유휘문(柳徽文)·이가순(李家淳)·유치명(柳致明) 등과 성리학(性理學)에 대해 질의 또는 응답하거나 선인들의 문집 간행 등 시사(時事)에 대해 상의하는 것들이다.
여러 편의 「여하계이공(與霞溪李公)」 중 1835년(헌종 1)에 보낸 편지의 별지는 사관(史官)이 역사를 기록할 때 개인적인 주관에 흐르지 말고 엄정, 공평하게 서술해야 함을 날카롭게 지적한 내용이다. 이 밖에 유치명에게 국상(國喪) 때의 복제(服制)에 대해 의논하는 내용과 이황(李滉)의 문집을 중간(重刊)하는 일에 대해 상의하는 내용이 있다.
잡저 가운데 「심경설(心經說)」은 저자가 평생 동안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학문적 성과가 집적·표출된 것으로 54개 항목에 걸쳐 선인들의 학설을 비교·검토하였다. 한편, 인심도심(人心道心)에 대한 「개도(改圖)」·「신도(新圖)」·「중용4도(中庸四圖)」 등 여러 도식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