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1책. 영본(零本). 필사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자와 필사연도는 알 수 없다. 본문에 낙장이 있어 전모를 살피기 곤란하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시 30수, 기(記) 3편, 서(書) 6편, 책(策)·묘지 각 1편, 제문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사실적 기법이 돋보이는 「한원직야여제료작(翰苑直夜與諸寮作)」·「여위농두와작(與謂農斗窩作)」, 암행어사 등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느낀 서정을 읊은 「산사작(山寺作)」·「안절영번시제등청각(按節嶺蕃時題登淸閣)」 등을 비롯하여 「경화석파대원군하시운(敬和石坡大院君下示韻)」을 포함한 화답시가 주종을 이룬다.
기 중 「낙영재기(樂英齋記)」는 1888년(고종 25) 저자가 경기도관찰사 재직 3년 되던 해 양주에 있는 낙영재를 수리하고 지은 것으로, 교육의 이념과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서(書) 역시 저자가 목민관으로 재임하면서 지은 「상묘당서(上廟堂書)」·「여병판서(與兵判書)」 등이 있다.
책(策)의 「책제(策題)」는 흉년시 구제대책의 요긴한 사항에 대하여 자문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본문은 남아 있지 않다. 이밖에도 「답민병석서(答閔丙奭書)」와 저자의 양부 세균(世均)과 양모 한산이씨(韓山李氏)를 대상으로 지은 묘지 등이 제목만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