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제세(際世), 호는 취원(翠園). 이조참판 목첨(睦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도승지 목장흠(睦長欽)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목행선(睦行善)이며, 어머니는 장령 윤효영(尹孝永)의 딸이다.
1670년(현종 11)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여러 언관직(言官職)을 거쳐 1674년(숙종 즉위년) 진향사(進香使)의 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헌납(獻納)·응교를 거쳐, 1677년 승지, 다음 해 대사간·이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남인이었던 까닭에 1680년 경신대출척이 일어나자 사직하였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대사간에 복직되고, 이어 한성부우윤·도승지·대사헌·대사성 등을 역임하고, 이듬해 경기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부제학이 되었다.
1692년 형조판서를 거쳐, 이듬해 병조판서가 되었으나, 1694년 갑술옥사로 다시 서인이 정권을 잡자 탄핵을 받고 삭주(朔州)에 안치되어, 유배지에서 죽었다. 1699년 관작이 복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