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금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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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당악정재(唐樂呈才)의 하나.
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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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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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당악정재(唐樂呈才)의 하나.
내용

조선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당악정재(唐樂呈才)의 하나. 일명 「금척」이라고도 한다.

조선 태조정도전(鄭道傳)이 태조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만든 악장(樂章)인 「몽금척」을 춤으로 꾸민 것이다. 악장은 태조가 잠저에 있을 때 꿈에 신령이 금자〔金尺〕를 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국가를 정제하시오.”라고 한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악장을 만든 뒤 태조가 이를 가상히 여겨 정도전에게 채색비단을 내리고 악공에게 익히게 하였다.

춤으로 꾸며진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402년(태종 2) 6월 예조의례상정소가 함께 조회와 연향악의 용악절도(用樂節度)를 정하였을 때 『고려사』에 전하는 「오양선(五羊仙)」 · 「무고(舞鼓)」등의 정재와 함께 「몽금척」 · 「수보록(受寶籙)」 등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때 이미 춤으로 추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 「금척」이라는 이름으로 『악학궤범』에 그 무의(舞儀)가 전하는데, 죽간자 2인, 족자(簇子) · 금척 · 황개(黃蓋) 각 1인과 춤 12인 등, 총 17인으로 구성되고, 따로 인인장(引人仗) · 정절(旌節) 등의 의물을 든 20여 인이 거들어 위의를 더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오면 다시 「몽금척」으로 환원되고, 『악학궤범』에서 보이는 호화스러운 의물도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

『악학궤범』에 전하는 춤의 절차를 보면 음악이 수령지곡(壽寧之曲:步虛子 令)을 연주하면 족자 1인과 죽간자 2인이 족도하면서 나란히 나아가 “봉정부지영이(奉貞符之靈異) 미성덕지형용(美盛德之形容) 기차우용(冀借優容) 식부연예(式孚宴譽).”라고 구호한다.

다음에 박을 치면 향당교주(鄕唐交奏)를 연주하고 죽간자 2인이 족도하며 물러서고 족자는 그대로 선다. 또, 박을 치면 좌우 제1대가 나아가 족자 좌우에 갈라서고 이어서 차례로 제6대까지 앞으로 나와서 좌우로 갈라선다.

다음 금척인이 “몽금척 수명지상야(夢金尺受命之祥也)…….”라고 치어(致語)를 창한다. 그 다음 6대 12인의 무원(舞員)이 악절(樂節)에 맞추어 “유황감지공명혜(惟皇鑑之孔明兮) 길몽협우금척(吉夢協于金尺)…….”의 금척사를 창한다.

이어서 6대 12인이 그 노래를 세 번 창하면서 진퇴한다. 다음 회무(回舞)를 세 차례 하고 다시 악절에 맞추어 ‘성인유작(聖人有作) 만물개도(萬物皆覩)’의 창사를 한다.

다시 회무하고 회선이 끝나면 각기 제자리에 돌아와 처음 대열대로 서고, 죽간자의 구호가 있다. “악기주어구성(樂旣奏於九成) 수용헌어만세(壽庸獻於萬歲).”의 구호가 끝나고 박을 치면 음악은 「보허자령」을 연주하고, 죽간자 · 족자 · 금척 · 황개 등이 먼저 물러나고 이어 무원 12인이 앞으로 나갔다가 염수하고 물러나면 을 쳐서 음악을 그치게 하고 춤이 모두 끝난다.

참고문헌

『태조실록』
『태종실록』
『악학궤범』
『진작의궤(進爵儀軌)』(순조 무자)
『진찬의궤(進饌儀軌)』(순조 기축)
『진찬의궤(進饌儀軌)』(헌종 무신)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고종 계사)
『한국전통무용연구』(장사훈, 일지사, 1979)
『국역악학궤범』(민족문화추진회,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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