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자 및 창건연대, 정확한 위치는 미상이나, 『용성지(龍城志)』에 의하면 지리산 제1봉 아래에 있었고, 더없이 좋은 절터로서 그 아래 용연기우처(龍淵祈雨處)가 있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천왕봉 아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명종 때의 문장가 권응인(權應仁)은 젊었을 때 친구 5명과 함께 이 절에서 독서하였다. 1592년(선조 25) 7월 왜병이 장수로 침략해오자 남원판관 노종령(盧從岭)은 장령(將領)과 관아권속을 이 절로 피신시켰고, 1593년 7월 반야봉(般若峰)을 넘어 삼기사(三岐寺)와 이 절로 왔다고 하였는데, 이 때 절을 소각시킨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