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사 오층석탑 출토 유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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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출토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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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일괄유물(一括遺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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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일괄유물(一括遺物).
내용

총 9점 중 금동불상 4구가 2020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었다. 무량사지 석탑은 1971년에 해체 수리되었는데, 이 때 5층 탑신(塔身)과 3층 탑신, 그리고 초층(初層) 탑신 안에서 사리구(舍利具)와 불·보살상 등이 발견되었다.

우선 5층 탑신의 사리장치에서는 청동외합(靑銅外盒)과 그 안에 금동의 내합(內盒)이 들어있었고, 다시 이 안에 수정제소병(水晶製小甁)과 다라니경(陀羅尼經)·자단목(紫檀木)·방분향(芳粉香)이 안치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청동외합은 하단부가 조금씩 넓게 퍼지고, 굽 없는 납작한 바닥을 지닌 동체(胴體) 위로 놓여진 꼭지 없는 뚜껑은 직립 구연을 지니고 모를 죽여 안으로 굽으면서 중앙부가 약간 솟아오른 모습으로서 뚜껑 상부가 많이 손상되어 있다.

금동내합은 이보다 크기는 작으나 동체부가 보다 직선적이며 상부에 놓인 뚜껑 역시 직립 구연(口緣)을 하고 모를 죽여 안으로 꺾이다가 상부를 편평하게 처리하였다. 이 금동내합의 하단부도 많이 손상된 채 발견되었다.

이 안에 들어있던 금속병은 상부가 결실되었으나 낮은 굽과 계란형의 몸체를 지닌 화병의 모습으로서 발견 당시에는 회백색 사리 93과(顆)가 들어 있었으며, 청동외합은 2단의 층단을 이룬 원형의 석조대좌 위에 올려져 있었다.

3층 탑신에서 발견된 소형의 금동불좌상은 앙·복련이 합쳐진 연화대좌에 우견편단(右肩偏袒)과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한 전형적인 고려 후기 불상으로서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초층 탑신 내부에서는 아미타불상(阿彌陀佛像)을 중심으로 좌·우에 지장(地藏)과 관음(觀音)의 금동삼존불(金銅三尊佛)이 발견되었는데, 아미타불은 팽이처럼 높이 솟은 육계(肉髻) 위에 작은 정상계주(頂上髻珠)가 첨가되고 사각형의 얼굴은 경직되어 침울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통견(通肩)의 법의와 가슴 앞을 가로지른 내의(內衣) 아래로 나비꼴의 띠매듭이 장식되었으며 오른손을 올리고 왼손을 내린 중품하생인(中品下生印)을 취하고 있다.

배 앞에서 나온 한 줄의 의습은 오른손 옷소매로 걸쳐지고 무릎 아래로 층단을 이룬 평행사선의 옷주름이 묘사되었다. 이 주름은 앞섶까지 늘어져 좌대처럼 형성되었고, 오른발이 왼쪽 무릎 위에 올려진 결가부좌의 모습이다.

다른 2구의 보살상은 크기만 약간 작을 뿐 같은 통견의 법의와 중품하생인의 손모습을 취하였지만, 관음보살상의 경우 수인은 반대이며 결가부좌도 왼발이 올려진 모습이다.

관음상은 머리 위로 삼산형(三山形)의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가슴 앞에 V자형의 영락이 흘러내리고 양 무릎 위에도 영락장식이 걸쳐져 있다. 지장보살은 둥그런 피모(被帽)를 쓴 전형적인 고려 지장보살상의 형태이지만, 피모의 외연이 규각(圭角)으로 모를 죽인 점이 독특하며 그 외의 장식이나 의습은 동일하다.

한편, 보고서에서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으나 양식상 조금 다른 1구의 금동보살좌상(金銅菩薩坐像)이 이들과 함께 발견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보살상은 다른 상에 비하여 늘씬한 상체를 지닌 매우 세장한 모습이다.

바르게 빗은 듯 직선형의 머리카락을 표현한 머리 위로는 높다랗게 상투를 틀어올렸지만 원래 이 위로 별도의 보관이 얹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귀 옆으로는 유려한 보발(寶髮)이 어깨 위에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복스럽게 살이 오른 둥근 얼굴에는 미소가 표현되었고 조금 길게 빠진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목 아래에는 연주(連珠)의 목걸이와 다시 하단에 3개의 화문으로 연결된 영락장식이 늘어뜨려져 있다. 통견의 법의와 가슴 앞을 직선으로 가로지른 내의 윗부분에서 내려온 나비꼴의 띠매듭은 2단으로 이루어져 상부를 조금 크게, 그리고 하부는 조금 작게 표현하였고, 여기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 자락이 무릎 위까지 흘러내렸다.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다리도 앞서의 관음상과 같이 왼발이 오른 무릎 위에 올려진 모습으로서 역시 삼존상의 협시였다고 추정된다. 아울러 함께 출토된 1점의 동경은 경연(鏡緣)을 얕은 테두리로 두르고 중앙에 화문좌(花文座) 위에 돌기된 1유(鈕)와 그 주위로 마름모꼴의 화문을 군데군데 배치한 독특한 문양이다.

다른 1점은 경연이 없는 얇고 둥근 판에 상단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 어느 곳에 걸 수 있도록 한 경상(鏡像)의 일종으로서, 내부에는 가는 선으로 원형두광(圓形頭光)과 화려한 보관, 그리고 가슴에는 영락이 장식된 관음상으로 추정되는 불상을 새겨 놓았다.

이상에서 무량사 석탑에서 발견된 유물들 가운데 소형의 금동불좌상이나 경상은 고려후기 13∼14세기에 한시적으로 유행한 형식이라는 점에서 무량사 석탑의 건립과도 시기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3층 탑신과 초층 탑신에서 각각 발견된 금동보살좌상과 아미타여래 삼존상은 고려와 조선 초에 유행했던 불상양식을 명확하게 보여주며, 관음과 지장으로 구성된 아미타여래삼존 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서 무량사 오층석탑 출토 금동불 일괄은 202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무량사 오층석탑의 해체와 조립」(홍사준, 『고고미술』 117, 한국미술사학회,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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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최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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