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7년명 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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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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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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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종. 1196년(명종 26) 제작. 높이 47.7cm. 일본 동경국립박물관 소장. S자형으로 굴곡진 용뉴(龍鈕)는 종신에 비해 작게 묘사되었고 용두는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그 입을 천판상(天板上)에서 띄운 채 보주로 연결시켰다.

용의 목에는 지느러미와 비늘까지 세세히 표현되었고 하단에서 뻗어나온 갈기는 마치 운문이나 당초문처럼 형식화되어 음통(音筒) 위에 고부조로 장식되었다.

음통은 층단의 구획이 없이 전체를 당초문으로 장식하였으나, 상·하단에는 턱을 두어 상단에만 연판문이 시문되었다. 용뉴와 음통을 둥글게 돌아가며 주조 때의 접합선이 돌출되었고, 이 접합선과 천판 외연까지의 구획을 연판문으로 촘촘히 장식하였으나 주조상의 결함인지 몰라도 4분의 1쯤이 표현되지 못하였다.

상대(上帶)와 하대(下帶)의 문양은 조금 달리 표현되었으나 모두 아랫단에만 연주문대를 두르고 있다. 상대는 연화를 중심으로 잎이 넓은 엽문으로 표현한 반면, 하대에는 만개된 연화를 중첩시문하고 그 사이를 덩굴형의 당초문으로 연결시켰는데 매우 유려하고 세밀하게 묘사되었다.

상대 아래 붙은 방형의 유곽대(乳廓帶)에는 그 외연을 모두 연주문대로 두르고 내부에는 당초문을 촘촘히 시문하였다. 유곽 내부에는 연화좌 위에 마치 유(鈕)처럼 낮게 돌기된 종유를 9개씩 배치하였다.

그리고 한쪽 유곽 아래의 종신 여백면을 택해 4행 54자의 음각명을 매우 또렷한 필치로 새겨놓았는데, 그 내용은 ‘明昌七年丙辰四月日鑄 成金鐘一重六十七斤 德興寺懸排普勸丹那同一心 聖躬萬歲上棟梁戶長金仁鳳副棟梁延甫慶讚陳蕃孝(명창7년병진4월일주 성금종1중67근 덕흥사현배보권단나동일심 성궁만세상동량호장김인봉부동량연보경찬진번효)’이다.

‘명창’은 금(金)나라의 연호이며 그 7년은 고려 명종 26년인 1196년에 해당된다. 그리고 ‘덕흥사’의 소재는 태고사사법(太古寺寺法)에 보이는 함경북도 회령군 팔을면 소풍산(小豊山)에 있던 귀주사(歸州寺)의 말사였다고 추측되나 그 내력 등은 분명치 않다.

한편 이 명문구(銘文區)의 좌우편으로는 당좌(撞座)와 함께 단독의 비천상이 앞뒷면 동일하게 부조되어 있다. 당좌는 1+5+10개의 연과(蓮顆)를 장식한 자방(子房) 주위로 복엽을 도안화한 10판의 연화문을 배치하고 각 연판 안에는 1줄의 판심(瓣心)이 첨가되었다.

그리고 몸을 오른쪽으로 튼 채 옆으로 나는 모습의 비천상은 두 손으로 지물(持物)을 받쳐들었으나 악기인지 향로인지는 분명치 않고, 위로 뻗쳐 흩날리는 몇 가닥의 천의(天衣)는 경직되고 부자연스럽게 처리되어 고려 후기 범종의 특징을 시사해 준다.

따라서 이 종 다음으로 제작된 범종에서는 입상화문대(立狀花文帶)가 본격적으로 등장되기 시작하여 완전한 독립문양대로 자리잡게 됨으로써 고려 후기 범종으로의 이행을 이루게 된다.

참고문헌

『朝鮮鐘』(坪井良平, 角川書店, 1974 )
「일본에 있는 한국문화재 10」(최응천, 『박물관신문』 250, 국립중앙박물관, 1992.6.)
집필자
최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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