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직물은 조선시대의 각종 문헌에 면포(綿布) · 목(木)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색 · 품질 · 용도에 따라서 백면포 · 구승백면포 · 목홍면포 · 오색목 · 백목 · 극세목 · 백세목 · 관목 · 생상목 · 홍세목 · 황세목 · 초록목 · 남목 · 자목 · 홍목 · 흑목 · 아청목 등 각양각색으로 명명되었다.
그러나 근년에 이르러서는 재래식 베틀로 제직된 면평 직물이 무명으로 명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무명은 광목(廣木) · 옥양목(玉洋木) · 서양목과 같은 면직물과 구별되어 명명된 우리나라의 토속 직물로서, 실용적인 춘하추동의 의복 재료 및 침구, 기타 생활용품 자료로 가장 많이 이용된 직물이다.
무명의 품질은 승 수(升數)로서 가름하는데(승 수를 샛 수라고도 한다.), 보통 일곱 새 정도가 튼튼하고 실용적이어서 실용적인 생활복에 많이 이용되었다. 열두 새, 보름 새는 섬세직에 들고 오늘날에는 열두 새가 극상이다. 조선시대의 『고사통(故事通)』에는 21승 면포가 기록되어 있다.
면화는 재래종과 육지면이 사용되었는데 무명은 주로 *고지피움헤바시움(Gossypiumherbaceum)*인 재래종 면화에서 실을 뽑아 짰다. 너비는 32∼36㎝(7寸) 내외였고, 한 필의 길이는 20m(40尺) 내외였다.
무명은 소색(素色)으로 짜서 표백해 사용하거나, 염색해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반드시 소색으로 짜지는 않았다. 평안도 지역에서는 염색된 면사로 배색해 호직물(縞織物)로 짠 다양한 무명이 생산되었다.
『성호사설(星湖僿說)』에도 번우(番愚) 지역에는 본래 푸르고, 붉고, 흰 세 종류의 무명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중 흰 것만이 전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무명의 색이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무명은 조선 태종 때 일본으로 수출되었으며, 면 종자와 제직 기술도 전파시켰다. 그리하여 일본인들도 면직물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초부터는 오히려 일본 면포와 공장제 제직 기술이 역전파되어 우리나라의 무명 생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무명은 질박하고 무기교하며 소백하고, 또 물레로 실을 자으므로 불규칙한 굵기 때문에 표면에 변화가 있어, 그 질감과 색감, 미적 특성이 우리 민족의 감각에 합당해 오랫동안 자동직기로 제직된 값싼 면포를 압도해 많이 사용되었던 옷감이다.
무명으로 옷을 지으려면 먼저 물에 담가서 날실 날기 때 먹인 풀을 깨끗이 뽑고 잘 세탁해 삶아서 널어 말린다. 그 뒤 다시 쌀풀을 먹여 양지에서 말린 다음, 손으로 만지고 발로 밟아서 다리거나 다듬이질해 사용한다. 색무명으로 사용할 경우는 풀을 빼고 세탁해 양지에서 말린 다음 염색하고 풀 먹여서 다리거나 다듬이질을 한다.
무명으로 옷을 지을 때 겨울옷은 솜을 두어 겹으로 지었으며, 봄 · 가을 것은 그냥 겹으로 지었고, 여름옷은 홑으로 지었다.
무명은 자동직기로 제직된 면직물인 광목 · 옥양목 등이 범람한 때도 농가에서 부녀자들에 의해 제직되어 자급자족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무형유산으로, 또한 일부 지역에서만 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