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언 44구. 『면앙집(俛仰集)』 권1에 실려 있다. 늙은 거지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서사적으로 읊은 내용이다.
새벽에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깨니, 늙은 거지가 아침밥을 구걸하는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그런데 그 소리가 근심도 슬퍼하는 기색도 없으므로 불러 연유를 묻는다.
이에 거지는 자신은 일찍이 부러울 것 하나 없는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나 아내와 자식과 함께 부족함 없이 살았는데, 갑자년(1504) 광왕(狂王 : 연산군을 가리킴.)을 만나, 하루아침에 조상 누대의 가산을 잃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생사도 모른 채 유리걸식하기가 서른 해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원망함도 없이 이미 사생우락(死生憂樂)조차 초탈하여 지팡이 하나에 생애를 맡겨 표표히 떠다니며, 굶어죽거나 얼어죽지 않은 것만을 자족하여 다른 근심이 없고, 공후장상(公侯將相)도 부러울 것이 없다는 대답을 남기고, 노랫소리도 드높게 대문을 나서더라는 내용이다.
작품에서 ‘갑자년의 일’이란 곧 연산군 때의 갑자사화를 지칭하는 것으로, 수많은 선비들이 사화의 와중에서 무고하게 희생되었던 지난 일에 대한 권계(勸誡)의 의미를 지닌다.
동시에 범상하지 않은 늙은 거지의 입을 통해서 인간세상의 명리나 부귀영화에 초탈한 도가풍의 안분지족(安分知足)과 늠연한 기상을 내세워,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교훈적 주제를 전달하려 한 작품이다. 시 속에 거지의 말을 직접화법으로 인용,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서사성을 강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