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명주(溟州). 우복야(右僕射) 문유보(文儒寶)의 손자이다.
처음에 대정(隊正)에 보임되었다가 이후 대장군이 되었는데, 1215년(고종 2)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로 파견되어 북계지역(北界地域)의 방수(防戍) 임무를 맡았는데 사졸들에게 상을 주면서 많은 뇌물을 받았으며, 주군(州郡)에 대한 착취 또한 심하여 원성이 높았다.
이듬해 거란의 유민들이 쳐들어오자 인근지역 군사를 지휘하여, 위주성(渭州城) 밖에서 적을 대파하는 공을 세웠다. 1217년 11월 거란이 다시 고주(高州)·화주(和州) 등 동계지역(東界地域)으로 쳐들어오자 상장군으로 중군병마사(中軍兵馬使)가 되어 대장군 유돈식(柳敦植)·기윤위(奇允偉) 등과 함께 출정하였다.
적들이 동계로 마구 쳐들어왔는데도, 의주(宜州)에 병력을 모아놓고 체류하며 싸우지 않고 온갖 장인(匠人)을 모아 군영(軍營) 안에서 사물(私物)을 만들게 하며 사소한 이익[錐刀]까지 탐하다가, 적의 포위를 당하여 성을 버리고 도망하여 패배를 자초하였다. 이로 인하여 섬에 유배되었으나 얼마 뒤 다시 복직되어 병부와 공부의 상서를 거쳐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우복야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