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1년(현종 2) 지방유림의 공의로 조광조(趙光祖)와 김식(金湜)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68년김육(金堉), 1694년(숙종 20)남언경(南彦經), 1734년(영조 10)이제신(李濟臣), 1792년(정조 16)김창흡(金昌翕)을 추가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어 위패는 서원터에 묻었다.
1919년 지방유림이 단(壇)을 설치하여 향사를 지내오다가 6·25사변 이후 퇴락되었던 것을 1974년에 중수, 개축함과 동시에 박세호(朴世豪) · 이원충(李元忠) · 남도진(南道振) · 이항로(李恒老) · 김평묵(金平默) · 유중교(柳重敎)를 추가배향하였다. 아울러, 단비(壇碑)를 세우고, 서원 사우(祠宇)의 현액이 경현사(景賢祠)였으므로 단의 명칭을 경현단(景賢壇)이라 하였으며, 단 입구에 신문(神門)을 세웠다.
경내 사우 자리에 설단(設壇)을 하였고 신문과 재실(齋室)이 있으며, 신문 밖에는 기념비가 있다. 단지(壇地)에는 정면 중앙에 조광조와 김식의 단비를 세워 봉안하였고, 왼쪽으로 남언경 · 김육 · 박세호 · 남도진 · 김평욱, 오른쪽으로 이제신 · 김창옹 · 이원충 · 이항로 · 유중교의 단비가 봉안되어 있다.
재실에는 고직(庫直)이 살고 있으며, 유림의 회합 및 제향(祭享) 때의 준비 등이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매년 8월 중정(中丁 : 두 번째 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2변(籩) 2두(豆)이고, 재산으로는 전답 1,200여 평 등이 있다. 경현단은 1986년 5월 2일 가평군 향토문화재(현,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