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공저(公著), 호는 관생와(觀生窩). 할아버지는 대사헌 민우수(閔遇洙)이고,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생후 6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었고, 아우인 민종현(閔鍾顯)과 함께 김양행(金亮行)에게 수학하였다.
약관에 벌써 문명이 자자하였으나 과거에는 응시하지 않았다. 1777년(정조 1)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태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3년 뒤 명릉참봉(明陵參奉)이 되고 1782년 장원서봉사(掌苑署奉事)에 임명되었다. 1784년 전생서직장(典牲署直長)으로 있으면서 문효세자(文孝世子)의 책봉례(冊封禮)를 거행한 뒤 경연관(經筵官)으로 선발되었으나 사직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에 걸쳐 관직이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1787년 사헌부장령에 부임하였다. 사학(史學)과 경제방면에 능통하였으며, 특히 유형원(柳馨遠)을 사숙(私淑)하였다. 그리고 실천적인 학문을 중시하였으며, 이직보(李直輔)·김이영(金履永)·김양순(金養淳)·원유승(元有昇)·이광희(李光熹) 등과 교유하였다.
저서로는『관생와유고(觀生窩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