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운거(雲擧), 호는 농운(農雲) 또는 화강(華岡). 금산군수(金山郡守) 민동혁(閔東爀)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해주정씨(海州鄭氏)로 사헌부감찰 정수교(鄭守敎)의 딸이다.
1891년(고종 28)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에 제수되었다. 이어 이듬 해 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 등을 역임하였고, 최익현(崔益鉉)에게 사사받았다. 1893년 사헌부장령, 1899년 홍문관시독, 이듬 해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비서원승(祕書院丞)을 거쳤다.
1901년 경상남도 자인군수(慈仁郡守), 이듬 해 평안남도 자산군수(慈山郡守)에 재임하였다. 만년에는 덕유산 남쪽에 운룡정(雲龍亭)을 짓고 이곳에서 학문을 강마하면서 곽종석(郭鍾錫)·기우만(奇宇萬)·정면규(鄭冕圭) 등을 포함한 당대의 명사들과 폭넓게 교유하였다. 저서로는 『농운유고(農雲遺稿)』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