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생전에 필사·편집해둔 것으로 추정된다. 서문과 발문은 없다.
8권 8책. 필사본.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2에 시 300여수, 권3에 서(序) 21편, 권4에 기(記) 25편, 권5에 서(書) 5편, 논(論)·변(辨) 각 1편, 설(說) 3편, 명(銘) 1편, 제발(題跋) 8편, 권6·7에 장(狀) 2편, 잡저·전문(箋文) 각 5편, 상량문 1편, 제문 21편, 축문 4편, 권8에 행장 2편, 묘갈명 3편, 묘표 1편, 묘지명 10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의 「기경팔맥도서(奇經八脈圖序)」와 「신증계현외서서(新增啓玄外書序)」 등은 자신이 편집한 책들의 편집 동기를 기술한 내용이다. 서(書) 가운데 1809년 진천(鎭川)에 재임하고 있던 벗 신정기(申鼎基)에게 보낸 것에는 흉년으로 끼니를 걱정하던 자신에게 소운관(蘇雲觀)이라는 이가 가르쳐준 ‘제기벽곡선방(濟饑辟穀仙方)’의 제조법과 효능 등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본초강목(本草綱目)』의 비법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1811년 통신사 이모(李某)에게 보낸 「여통신부사이교리서(與通信副使李校理書)」에서는 평소 『환우기(寰宇記)』·『이역지도경(異域地圖經)』을 통해 알게 된 당시 일본의 학술과 풍물 등을 소상히 소개하고 있다. 나아가 원예·연금술 및 학계의 상황 등을 폭넓게 살피고 돌아온 뒤 『일동인물풍속기(日東人物風俗記)』를 함께 편집하자고 하였다.
족제 정원용(鄭元容)에게 보낸 「여족제좌사선지서(與族弟左史善之書)」에서는 훈민정음에 관해 논하였다. 그의 생부가 일찍이 한글을 분석해 세워놓은 학문적 성과를 기술한 것으로, 당시 지식인들 사이의 한글에 대한 연구를 살피는 데 참고 자료가 될 만하다. 그밖에 「제벽곡방후(題辟穀方後)」·「귀후권(歸厚券)」·「가수현유생강의식(嘉樹縣儒生講議式)」 등의 글들은 모두 자료적으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