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2023년 12월 28일 국보로 승격되었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익공식(翼工式)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조선시대 밀양도호부의 객사 부속건물로, 손님을 접대하거나 주변 경치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던 건물이다. 처음 지어진 것은 고려시대로, 그뒤 여러 차례의 소실과 재건을 거듭하였다.
원래 그 자리에는 신라시대에 세워진 영남사(嶺南寺)라는 절이 있고 절의 종각으로 금벽루(金壁樓)라는 작은 누각이 있었는데, 고려시대에 절은 없어지고 누각만 남아 있었던 것을 1365년(공민왕 14) 누각을 새로 짓고 절의 이름을 따서 영남루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60년(세조 6)에 중수하면서 규모를 크게 넓혔으며, 선조 때 소실되었던 것을 1637년(인조 15) 다시 지었고 마지막으로 1844년(헌종 10) 불에 탔던 것을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넓은 강을 옆에 낀 절벽 위에 남향으로 있다. 세부적으로 조선시대 말기의 건축양식을 지니고 있는데, 출목(出目)을 갖춘 3익공식의 공포구성과 공포 주변에 새겨진 부재의 장식 수법에서 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즉, 외부로 뻗은 쇠서[牛舌]에 연꽃 또는 연봉 장식이 첨가되고 판재화(板材化)된 3익공의 내부도 초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밖에 고주(高柱) 위에도 복잡한 장식이 중첩되며 용머리를 장식한 충량(衝樑)이 올라와 있다.
전체적으로 부재도 크고 기둥 간격도 넓으며 중층(重層)으로 되어 우리 나라 건축 중에서는 크고 우람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더욱이, 건물 서편에 작은 부속건물이 딸려 있고 지붕이 여러 단으로 낮아지면서 연결되어 독특한 외관을 구성한다.
빼어난 경관과 건축미가 조화를 이룬 건물의 하나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이 건물을 노래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여러 문인들의 시가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