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성행(聖行). 금산군수 박필기(朴弼基)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풍천임씨(豊川任氏)로 임진영(任震英)의 딸이다.
1750년(영조 26)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에 천거되었고, 1752년 부수(副率)에 전보되었다. 1758년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에 오르고, 그 뒤 장례원사평(掌隷院司評)·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역임하였다.
또한, 담양현감으로 나갔다가 사어(司禦)에 복귀되어 군자감정·성천부사를 지냈다. 1780년(정조 4) 사복시주부에 복귀하였다.
개령현감(開寧縣監)과 담양현감으로 있을 때 이속들의 창고 포흠(逋欠: 관청의 물건을 사사로이 씀)을 막고 수리시설을 설치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으므로 고을 백성들이 송덕비를 세웠다. 저서로는 『자경속편(自警續編)』 6책과 『유고(遺稿)』 1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