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6년(의종 10)에 춘주도안찰사(春州道按察使)를 지내고 1157년에는 형부원외랑(刑部員外郎)으로 금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1161년 급사중(給事中)으로 있으면서, 왕이 궁인 무비(無比)의 사위인 김광균(金光均)의 임명장에 서명하도록 하자 그 부당함을 알면서도 그대로 서명하였다. 1163년에는 동북면병마부사(東北面兵馬副使)를 겸임하였다.
좌정언 문극겸(文克謙)이 환관 백선연(白善淵)·무비 등을 탄핵할 때 연서(連書)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문극겸이 좌천되어도 자신의 직위를 지키는 데만 급급하여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1173년(명종 3)에는 수사공 좌복야(守司空左僕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