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육화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전기에, 급사중, 동북면병마부사, 수사공 좌복야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관직
형부원외랑|급사중 겸 동북면병마부사|수사공 좌복야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고려 전기에, 급사중, 동북면병마부사, 수사공 좌복야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1156년(의종 10)에 춘주도안찰사(春州道按察使)를 지내고 1157년에는 형부원외랑(刑部員外郎)으로 금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1161년 급사중(給事中)으로 있으면서, 왕이 궁인 무비(無比)의 사위인 김광균(金光均)의 임명장에 서명하도록 하자 그 부당함을 알면서도 그대로 서명하였다. 1163년에는 동북면병마부사(東北面兵馬副使)를 겸임하였다.

좌정언 문극겸(文克謙)이 환관 백선연(白善淵)·무비 등을 탄핵할 때 연서(連書)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문극겸이 좌천되어도 자신의 직위를 지키는 데만 급급하여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1173년(명종 3)에는 수사공 좌복야(守司空左僕射)에 올랐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