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선천 출신. 1920년 대한청년단을 조직하고 독립운동 자금조달 등의 활동을 하면서 이에 비협조적인 평안북도 선천군 태산면장 김병준(金炳俊)과 서기 1명을 사살한 뒤 상해로 망명하였다. 1921년 신의주 지방법원에서의 궐석재판으로 무기징역이 언도되었다.
그해 베트남의 하노이시로 갔으며,1938년 베트남에서 상해로 잠입하던 중 일본헌병에게 붙잡혀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언도받고 경성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1940년에 징역 7년6개월로 감형되었고, 1943년에 병보석으로 출옥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