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규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동래고등보통학교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며,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3년(고종 30)
사망 연도
1977년
출생지
경상남도 밀양
정의
일제강점기 때, 동래고등보통학교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며,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경상남도 밀양 출신. 1919년 3·1운동의 일환으로 그해 4월 동래고등보통학교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시위 도중에 붙잡혀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언도받았다.

1920년 서울의 황상규(黃尙奎: 일명 白民)의 지령을 받고, 만주에 설치할 무관학교의 설립기금 조달을 목적으로 신의주에서 파견된 김노봉(金魯鳳)을 만났다.

두 사람은 밀양경찰서를 폭파할 계획을 세우고, 그 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우선 창령의 거부 하경석(河慶錫)의 집에 침입하여 군자금 3,000원을 강요한 끝에 150원을 빼앗은 뒤 서울의 황상규에게 전달하려던 차에 붙잡혀,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을 언도받고 부산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포장이 서훈되었고,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광복삼십구년사』 Ⅰ(광복삼십구년사편찬위원회, 1984)
「동래읍범죄자명부(東萊邑犯罪者名簿)」
집필자
강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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