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선천 출신. 1919년 선천에서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하다가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의 창설에 참여하여 서기로서 활동하였다.
1920년 독립청년단 및 각 독립단체가 통합되어 광복군으로 개편되자 정보부원이 되었고, 광복군사령부 군기대(軍紀隊: 憲兵隊) 부대장에 임명되어 활약하였다.
1921년 군자금 모금, 국내행동대원 감시 및 정보 수집을 위하여 국내에 잠입하여 활동하던 중 평안북도 제3부형사대에 의하여 의주에서 붙잡혔다.
이 해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다음 해 평양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3년 5개월 만에 평양형무소에서 출옥하여 1924년부터는 선천에서 한의원이 되어 빈민들을 돕기도 하였다.
1928년 동아일보사 안동지국(安東支局) 기자를 역임하였고, 1938년에는 평안남도 개천에서 신사참배거부 및 그 선동자로 지목받아 일본경찰의 예비검속을 당하여 구속된 뒤 강제퇴거되는 등 항일운동을 계속하였다.
1968년 대통령 표창,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