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춘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돕고, 간도 전역에 학교를 설립하여 인재 양성과 교민 보호에 힘쓴 독립운동가.
이칭
우화(雨華)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2년(고종 9)
사망 연도
1940년
출생지
함경북도 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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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돕고, 간도 전역에 학교를 설립하여 인재 양성과 교민 보호에 힘쓴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호는 우화(雨華). 함경북도 회령 출신. 1894년 청나라의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왔을 때 위안스카이의 통역관으로 활동하였으며 그 뒤 동북 만주로 이주하였다.

1910년 이후 만주로 건너온 안창호(安昌浩)·이동휘(李東輝)·안중근(安重根) 등 애국지사 수백 명을 자택에서 기숙하게 하였고, 제1회 대한국민회총회를 개최하여 교포들의 생계유지책을 논의하였다. 이 후 연길도윤공서(延吉道尹公署) 외교부(外交部)에 근무하였다.

만주에 대한 중국법령이 공포되어 교민의 토지가 몰수될 지경에 이르자, 총통 위안스카이를 방문하여 그 법령을 철회하게 하고 간민(墾民)이라는 이름으로 한인의 토지소유를 합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또한, 자신의 집을 간민회관(墾民會館)으로 기증하기도 하였으며, 간도 전역에 중·소학교(中小學校) 70여 개를 세워 인재양성과 교민보호에 전력하였다. 1940년 용정(龍井)에서 죽었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유공자공훈록』4(국가보훈처, 1987)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1956)
집필자
강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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