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지방지배는 한성시대(漢城時代) 이래 시행되어온 담로제(擔魯制)가 웅진시대(熊津時代) 후기에 와서 점차 오방제(五方制)의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비천도(泗沘遷都) 후에는 전국을 크게 다섯 구역으로 나누어 통치하는 정연한 형태의 지방지배방식인 오방제가 정착되었다.
방성(方城)은 모두 산의 험한 곳에 의지한 산성의 부류에 해당하며 석축(石築)된 것도 있다고 하였다. 또, 방에는 많으면 1천명, 적으면 7백∼8백명의 병력이 있고, 성안의 사람 수는 많은 곳은 1천명이며, 적은 곳은 7백∼8백명이 되며, 성안의 호수가 많은 곳은 5백가(家)에 이른다고 하였다.
5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중방 고사성(古沙城 : 전라북도 고부(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동방 득안성(得安城 : 지금의 충청남도 은진), 서방 도선성(刀先城, 일명 九光城 : 위치 미상), 북방 웅진성(熊津城 :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이다. 오방에는 각기 10개 내지는 6, 7개의 군이 소속되어 있었다.
『주서(周書)』 백제전에는 5방(五方)의 명칭과 조직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5방에는 각각 방령(方領) 1명이 있는데 달솔(達率)의 관등을 가진 자가 맡고 보좌관으로 방좌(方佐) 2명을 두었다. 방령은 지방통치의 행정적 책임자인 동시에 군사적 지휘자로서의 구실도 함께 하였다. 방령이 ‘중국의 도독(都督)에 비견된다’고 하고 ‘방령이 병사 700명 이상에서 1200명 이하를 통솔했다’는 표현을 통해 군사적 책임자로서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방령에 관해서는 554년에 동방령(東方領)인 물부막가무련(物部莫哥武連)이 동방 소속의 군사를 이끌고 함산성(函山城: 지금의 충청북도 옥천)을 공격한 『일본서기』의 기록과, 660년 7월에 의자왕(義慈王)이 태자 및 웅진방령(熊津方領)의 군사와 함께 항복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단편적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