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배순은 천성과 효성이 지극하고 학문에 힘써 이황(李滉)이 소수서원(紹修書院)에서 유생에게 학문을 강론할 때 그도 참여하여 글을 배웠다.
그 뒤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3년복을 입고 철상을 만들어 기리는 등 제자의 예를 다하였다. 배순이 죽자 군민들이 정려문을 세우고 이 마을을 ‘배점’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비는 조선 중기 이 지방에서 대장간을 했던 철장인(鐵匠人) 배순(명종∼광해군)의 정려비다. 방형 대석 위에 비신을 놓고, 이수(螭首)는 설치하지 않았다. 정려비 앞면에는 '충신백성배순지려 복 선조대왕삼년상(忠臣百姓裵純之閭 服 宣祖大王三年喪)'이라고 음각했다. 배순이 선조 임금의 3년상 동안 상복을 입었다는 뜻이다.
비의 뒷면에는 행장을 적었다. 이에 따르면 1615년(광해 7) 정려를 받았고 1649년(인조 27) 손자 배종(裵種)이 비석을 세웠다. 비의 측면에는 1755년(영조 31) 그의 7대 외손(外孫) 임만유(林晩維)가 비석에 '충신'이란 말을 넣어 고쳐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