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松廣寺)의 부속암자였다. 이 절은 1200년(신종 3)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창건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것을 1606년(선조 39)에 응선(應禪)과 영기(靈機) 등이 법당을 중건하고 불구(佛具) 등을 새로 갖추었으며, 1725년(영조 1)에는 청인(淸仁)이 동지 21인의 도움을 얻어서 법당과 동각(東閣)·원응방(圓應房) 등을 중수하였다.
1771년에는 교안(敎安)과 사달(思達)이 보조국사의 영각(影閣)을 중수하였다. 그리고 1891년(고종 28)에는 화성(華性)이 중건하였으며, 1905년에는 용운(龍雲)이 청원루(淸遠樓)를 중수하였다. 그 뒤 명맥을 이어오다가 6·25 때 전소된 뒤 다시 복원하지 못하였다. 이 절은 보조국사가 정혜사(定慧社)를 창설하기 위해서 송광사를 중창할 때 머물렀던 절이라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