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경을 제외한 서경(西京)·동경(東京)·남경(南京)에 설치하여 3경이라고 불렀다. 서경은 태조(太祖) 원년에 평양대도호부(平壤大都護府)를 설치하였다가 성종(成宗) 14년에 3품 이상의 지서경유수사(知西京留守事)를 두고 그 다음으로 4품 이상의 부유수(副留守)를 두었다.
동경은 성종이 경주를 동경으로 바꾸고, 3품 이상의 유수사(留守使)와 4품 이상의 부유수를 설치하였으며, 남경은 문종(文宗)때에 양주(楊州)를 남경으로 고치고 3품 이상의 유수와 4품 이상의 부유수 1명을 각각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