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로전선은 우리나라에서 세번째로 가설된 기간 전신선로이다. 서로전선이나 남로전선이 청국과 일본 등 한반도에서 각축을 벌이던 외세와 깊은 연관이 있었던 데 반해, 이 전신선로는 우리 정부가 이 땅에 진출하려는 외국세력을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완성하였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이 전신선은 남로전선의 가설공사가 진행되던 1888년 2월 남로가 준공됨을 기다려 곧 그 선로를 다시 연장하여 한성으로부터 함경도에 이르는 육선을 가설하고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의 러시아 전신선에 접속시킨다는 우리 정부의 비밀계획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계획은 당시로서는 긴요하고 유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하였으나 이를 위한 준비를 계속해 왔다.
그 뒤 원산지방이 개항된 지 이미 10년이 지나며 각국의 상선과 내외의 상인이 많이 모여들어 그들이 신속한 통신시설을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1890년 3월 우리 정부에서는 한성으로부터 춘천을 경유하여 원산에 달하는 1,000여 리(약 392.7km)의 전선을 급히 착공, 가설하려고 하였다.
당시 청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에서는 전선가설을 강력히 추진하여 1891년 2월 15일 청국과 원산전선합동(元山電線合同)을 체결하고, 7일 뒤인 2월 22일에는 주관 부서인 전보총국에 공사의 착공을 시달하는 한편, 인천과 부산의 양 감리에게 원산 및 춘천전보국의 창설에 필요한 비용으로 각 2,000원씩을 마련하도록 하였다.
한편, 전보총국에서는 전보국 주사 조한근을 3월 26일에 함경도의 공사 현지로 보내 공사진행을 서두르도록 하였으며, 4월 2일에는 원산과 춘천에 각각 전보국을 설치하였다. 6월 20일에는 원산까지의 가설공사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달 25일에는 북로전선의 전신업무가 개시되었다.
북로전선의 가설은 우리 정부가 자의로 발안하여 가설을 위한 자재의 준비와 기술부담도 우리의 전보총국에서 단독으로 수행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