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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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금신보 / 북전
양금신보 / 북전
국악
작품
조선 중기까지 연주되었던 가요의 하나.
이칭
이칭
후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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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까지 연주되었던 가요의 하나.
내용

조선 중기까지 연주되었던 가요의 하나. 일명 뒷뎐 · 후정화(後庭花)라고 한다. 언제 성립된 곡인지 정확히 알수 없으나, 고려 충혜왕이 즐겼던 음란한 음악인 「후전진작(後殿眞勺)」과 같은 곡이라면 고려시대의 가요로 소급될 수도 있다. 조선 성종 때 「쌍화점(雙花店)」 · 「이상곡(履霜曲)」과 함께 노랫말이 고쳐졌다.

『악학궤범』 권5 ‘학연화대처용무합설(鶴蓮花臺處容舞合設)’에 북전[急機]이 창주(唱奏)되었다는 기록과 함께 노랫말이 전해온다. 『금합자보(琴合字譜)』(1572)와 『양금신보(梁琴新譜)』 등에는 원래의 노랫말이 실려 있다. 따라서 『대악후보(大樂後譜)』에 실려 있는 북전악보에는 성종 때 고쳐진 노랫말이 실려 있으며, 『금합자보』 · 『양금신보』 등의 악보에 실려 있는 노래말과는 다르다.

장단은 8박으로 되어 있고 속도는 알 수 없으며, 형식은 3장으로 나누어져 있고 여음(餘音)이 있다. 『금합자보』에 조명(調名:조 이름)이 명시되어 있는 평조와 우조북전은 『양금신보』 중대엽의 4조 가운데에서 평조 · 우조와 그 구성음 · 중심음 · 종지형 등이 일치한다. 『양금신보』에는 조명이 명시되지 않았으나 평조에 해당한다.

『금합자보』 이후의 여러 악보에 실려 있는 북전악보를 통해서 영조 이전까지는 중대엽과 같이 평조 · 우조 · 평조계면조 · 우조계면조의 4조로 모두 연주되었으나, 영조∼순조 이후부터는 우조계면조로 연주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형식도 3장과 여음이 있는 형식에서 5장과 여음이 있는 것으로 바뀌었으며, 선율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장식음이 첨가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학포금보(學圃琴譜)』에는 노랫보로서 가락의 윤곽을 알 수 있게 표기한 수파형악보(水波形樂譜)와 함께 거문고악보로서 주1 · 주2 등이 있다. 이북전은 초북전을 높여서 마치 가곡의 두거(頭擧)와 비슷하게 드러내는 지름형태처럼 되어 있다. 『가곡원류』의 북전의 노랫말을 실은 부분에는 ‘臺(대)’라는 글자가 보인다.

그 밖의 여러 악보에 4조의 북전악보가 보이며, 4조를 다 싣지 않은 고악보에는 ‘역괘이기(易棵易己)’라는 말이 있어 북전이 거문고의 괘를 바꾸어서 각기 다른 4조를 연주하기 쉽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현재에는 북전이 연주되지 않아 어떠한 형태의 음악이었는지 악보만으로써는 잘 알 수 없다.

참고문헌

『대악후보(大樂後譜)』
『금합자보(琴合字譜)』
『양금신보(梁琴新譜)』
『학포금보(學圃琴譜)』
『악학궤범(樂學軌範)』
『가곡원류(歌曲源流)』
「북전과 시조」(황준연, 『세종학연구』,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6)
「안상금보이후의 북전」(권오성, 『음대학보』 1, 서울대학교 음대학생회, 1963)
주석
주1

옛 가곡 곡조의 하나. 우리말샘

주2

북전(北殿) 다음에 부르는 가곡 곡조.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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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권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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