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인 일품요리로 골동반(骨董飯)이라고도 하였고, 궁중에서는 비빔이라고 하였다.
비빔밥은 1800년대 말엽의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비로소 등장한다. 여기에는 “밥을 정히 짓고 고기는 재워 볶고 간납은 부쳐 썬다. 각색 남새를 볶아 놓고 좋은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서 부숴 놓는다. 밥에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위에는 잡탕거리처럼 계란을 부쳐서 골패짝만큼씩 썰어 얹는다. 완자는 고기를 곱게 다져 잘 재워 구슬만큼씩 빚은 다음 밀가루를 약간 묻혀 계란을 씌워 부쳐 얹는다. 비빔밥 상에 장국은 잡탕국으로 해서 쓴다”고 쓰여 있다.
문헌으로는 1800년대 말엽에 나타나지만 그 역사는 짧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산신제·동제 등은 집에서 먼 곳에서 지내므로 식기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또 제물은 신인공식(神人共食)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릇 하나에 이것저것 받아 섞어서 먹었을 것이다. 조상에 올리는 제사의 경우도 제물을 빠짐없이 음복하기 위하여 밥에다 가지가지 제찬을 고루 섞어 비벼 먹었을 것이다. 따라서 비빔밥은 제삿밥에서 발달한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도 제사를 지내는 집에서는 자시에 음복례를 지내고 젯메와 제상에 올린 적·숙채·간납 등을 넣고 밥을 비벼서 나누어 먹는 풍속이 있다.
밥은 흰밥이 가장 좋다. 찬밥도 더운밥도 좋지 않고 김은 안 나면서 굳어지지 않은 밥이 좋다. 찬물(饌物)은 정해진 격식이 없지만 고기는 쇠고기 볶은 것, 닭고기 삶아 무친 것, 쇠고기 육회 등을 쓰고, 나물은 반드시 삶아서 무친 것, 데쳐서 볶은 것, 소금에 절였다 볶은 것 등 익혀서 만든 것이라야 한다.
계절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를 준비하며, 계란으로 지단을 부쳐서 고명으로 위에 얹는다. 육회는 맛이 좋으나 안 먹는 사람을 위해서 볶아 쓰기도 한다. 비빌 때에 넣는 재료가 많으면 따로 간을 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볶은 고추장을 딴 그릇에 담아 곁들여놓아서 식성에 따라 매운맛을 가감하게 한다. 볶은 고추장은 약고추장이라고도 하며, 자반에 곁들이는 것은 되게 만들지만 비빔밥에 쓸 것은 물을 조금 풀어서 짜지 않게 볶아야 한다. 참기름도 비비는 사람이 자유로 넣도록 딴 그릇에 담아놓는다.
섣달 그믐날에는 부엌 찬간에 있는 먹다 남은 반찬이 그대로 해를 넘기는 것을 꺼려하였다. 그래서 남은 밥에 반찬을 모두 넣고 비벼서 밤참으로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다.
시골에서는 농사철이면 아낙네들이 들밥을 이고 나가는데, 밥은 큰 그릇에 푸고 나물들은 바가지에 듬뿍 담아 나가고 그릇으로는 자그마한 바가지를 많이 가지고 나간다. 그러면 먹는 사람들은 바가지에 먹을 만큼 밥을 덜고, 나물과 고추장을 덜어넣고 잘 비벼 먹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고장에서나 비빔밥을 잘 만들어 먹는다. 비빔밥 중에서는 특히 전주비빔밥·진주비빔밥 등이 유명하다. 진주에서는 비빔밥을 헛제삿밥이라 한다. 또한 밤중에 음식을 파는 집을 헛제삿집이라고 한다. 이러한 말은 밤참을 먹는 것이 마치 제례 후에 음복을 하고 종부가 비벼주는 밥을 먹는 듯하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