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초기에는 태복감(太卜監)·태사국(太史局)으로 나누어 설치하였는데 1023년(현종 14)에 태복감을 사천대(司天臺)로 개칭하였으며 문종(文宗)이 사천대와 태사국의 관원을 정리하였다. 다시 예종(睿宗)대에 사천대를 사천감(司天監)으로 고쳤는데 1275년(충렬왕 원년)에 사천감을 관후서(觀候署)로 바꾸었다가 그후 다시 사천감으로 복원하였다.
1308년(충렬왕 34)에 충선왕(忠宣王)이 태사국을 병합하여 서운관(書雲觀)으로 하고 관원을 정비하였다.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사천감으로 고치고 판사(判事) 이하의 관원들을 문종때의 옛 제도대로 복구하였는데 다만 복조교(卜助敎)를 더 두어 종9품으로 하였다. 또 따로 태사국을 세워 영(令) 이하는 관직과 품계는 문종때의 옛 제도대로 복구하였다.
1362년(공민왕 11)에 다시 사천감과 태사국을 병합하여 서운관이라 하고 그 정원 품계도 고쳐서 판사는 정3품으로, 정(正)은 종3품으로, 부정(副正)은 종4품으로, 승(丞)은 종5품으로, 주부(注簿)는 종6품으로, 장루(掌漏)는 종7품으로, 시일(視日)은 정8품으로, 사력(司曆)은 종8품으로, 감후(監候)는 정9품으로, 사신(司辰)은 종9품으로 하였다.
1369년(공민왕 18)에 다시 나누어 사천감과 태사국이라 하였고, 관리의 정원 및 품계는 공민왕(恭愍王) 5년의 관제를 사용하였다. 1372년(공민왕 21)에 다시 병합하여 서운관이라 하고 11년의 관제를 썼다. →서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