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공불환도는 조선 후기,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고사인물화이다. 2018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은 중국 후한의 중장통이 전원생활에 대해 쓴 「낙지론」의 내용을 시각화한 것이다. 영의정·좌우정·우의정 삼공의 벼슬과도 바꾸지 않을 행복한 전원생활을 누리는 장면을 그렸다. 관지에 의하면 1801년 순조의 병환이 완치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림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이 그림은 힘차면서도 웅혼한 기상을 표현한 김홍도의 대표작이다. 여유로우면서도 짜임새 있는 구도, 산수와 풍속이 혼연일체가 된 걸작이다.
김홍도가 1801년( 순조 1)에 비단 바탕에 수묵담채로 그렸고, 세로 133㎝, 가로 418㎝이며,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되어 있다. 중국 후한(後漢) 말의 유학자 중장통(仲長統, 180~220)이 마음 편한 전원생활에 대해 쓴 「낙지론(樂志論)」의 내용을 시각화한 것이다. 김홍도는 중국 문인의 글을 주제로 삼아 이를 조선의 풍속으로 묘사해낸 재능 있는 화가였다. 여유로우면서도 짜임새 있는 구도, 산수와 풍속이 혼연일체가 된 걸작이다. 원래는 8폭 병풍으로 꾸며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지금은 한데 붙여서 족자로 표구하였다. 화면의 오른쪽 아래에 7군데 불탄 자국이 있다. 하지만 대체로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화면 왼쪽 위에는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홍의영(洪儀泳, 1750~1815)이 쓴 중장통의 「낙지론」 전문(全文)과 작품의 제작 배경을 밝힌 관지(款識)가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신유년 겨울 12월에 임금의 병환인 수두가 나아서 온 나라가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유후 한공이 계병을 만들어 휘하의 벼슬아치에게 나누어 주니 대개 전에 없던 경사를 기념한 것이다. 한공과 나는 「신우치수도(神禹治水圖)」를 얻었고, 총제관은 「화훼영모도(花卉翎毛圖)」를 얻었으며, 주판은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로 하기를 원하니 각자 그 좋아하는 것을 얻었다. 그림이 이미 이루어졌으므로 드디어 중장씨(仲長氏)가 지은 「낙지론」을 화제로 썼는데, 그 말이 그림에 부합되는 것을 골랐다. 장차 그 좋아하는 바가 이루어지고 중장씨가 논한 내용과 단원의 그림에 나타난 뜻을 저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간재 홍의영이 단원이 그린 「삼공불환도」에 제를 쓰다.[辛酉冬十二月 玉候水痘翌瘳 八域欣忭 留後韓公作稧屛 分于僚屬 盖識曠前之慶也 韓公及余得神禹治水圖 摠制得花卉翎毛 州判願爲三公不換圖 各取其好也 圖旣成遂題仲長氏樂志論 取其語之副於圖 且期成其所好 無負仲長之論檀園之畵也 艮齋題于檀園三公不換圖]”
즉, 1801년 순조(純祖, 재위 18001834)의 수두 완치를 경하(慶賀)하면서 개성 유수(開城留守) 한용귀(韓用龜, 17471828)가 병풍 여러 벌을 주문해 휘하 관원과 나누어 가졌고, 이 그림은 그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제목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는 남송(南宋) 문인 대복고(戴復古, 1167~1248)의 시 「조대(釣臺)」에 ‘은거자의 강산을 삼공 벼슬과도 바꾸지 않겠다’는 구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삼공불환도」화면은 산과 들판과 바다가 펼쳐지는 자연 속에서 영의정 · 좌의정 · 우의정 삼공이 조금도 부럽지 않는 전원의 생활을 누리고 있는 장면이다. 기와집을 에워싼 산세는 속세를 떠난 선비의 기상을 표출하듯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 밑 집안에는 다양한 사대부가의 생활 정경이 자못 서정적인 분위기로 묘사되어 있다.
담 너머 집 밖에는 너른 논밭에 농부의 손길이 바쁘고 왼쪽에 비스듬히 솟아 있는 나지막한 동산 밑에는 4채의 초가가 보인다. 그 위에 돛대만 삐죽하게 보이는 바닷가의 풍경이 어스름한 안개 속에 잠기듯이 표현되어 있다. 한가로우면서도 시정이 깃든 전원의 생활상이지만, 그것을 그려내는 필치는 힘 있고 기상이 서려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절제되면서도 뿜어내는 필력은 말년의 절정을 보여 주고 있다. 중년의 세련된 기교를 넘어서 힘 있고 초탈한 필치로 웅혼(雄渾)한 형상을 유감없이 표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굵은 필선으로 형세를 잡고 그 선을 따라 점을 찍어 내려가서 나무와 풀을 표현하고 그 안에 몇 줄의 갈필(渴筆 : 먹물을 많이 안 묻히고 그리는 일)로 준(皴 : 산이나 바위 표면의 질감을 표현하는 기법)을 표현하는 방식은 김홍도의 50대 후반 이후에 선호하는 산의 표현 방식이다. 아울러 공간의 활용도 무르익어 응집과 여백이 적절히 조응하면서 웅혼하면서도 시원한 공간감을 자아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