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형식적으로나마 신라 왕실의 혈통적 후계자임을 자인하였으며, 왕실에 대해서도 무력적 토벌을 피하고 평화적 해결을 도모하였다. 국초에 있어서 신라의 인물을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많이 등용하였다는 점에서, 고려가 건국 이래로 신라의 모든 문물과 제도를 계승하여 왔을 것은 넉넉히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정도의 차이는 다소 있을는지 모르나, 종래 신라의 당나라에 대한 태도와 비슷하게 접촉하였다. 그러므로 고려의학은 건국 초기에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신라의학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불교에 수반된 인도의방(印度醫方)의 영향을 불교의 융성과 함께 더욱 받게 되었다.
상약국은 장의서(掌醫署)·상의국(尙醫局) 또는 봉의서(奉醫署)라고 불렸는데, 건국 초 경종 1년에는 연수원(延壽院)이라고 불렸다.
이 연수원은 상약국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며 문종 때는 정6품의 위치인 봉어(奉御)가 주재하고 시의(侍醫, 종6품) 2인, 직장(直長, 종7품) 2인, 의좌(醫佐, 정9품) 2인이 직접 진료하는 시의의 지휘하에 왕과 왕족의 진료 및 투약에 종사하고, 그밖에 의침사(醫針史) 2인, 약동(藥童) 2인이 배치되어 있다.
의침사는 침술치료, 약동은 왕약의 조제를 담당했었다. 더욱이, 서령사(書令史) 2인과 산사(算士) 2인이 부속되어 있어 그들은 서무·회계의 처리를 관장했던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