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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리(胥吏)의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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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서리(胥吏)의 복식.
내용

서리는 관료계급과 평민계급의 중간에 있으며, 집권기구의 말단을 담당하는 관리를 말한다. 이에는 경아전(京衙前)과 외아전(外衙前)이 있었는데, 경아전에는 녹사(錄事)와 서리(書吏)가 속하였고, 외아전에는 이방·호방·예방·형방·공방 및 사창색(社倉色)을 비롯한 각색(各色)·서원(書員)·승발(承發) 등 소위 향리가 속하였다.

이들의 복제는 다음과 같았다. ① 경아전 : ≪경국대전≫ 예전(禮典) 의장(儀章)에 나와 있는데, 여기에는 공복(公服)과 상복(常服)의 구별이 보이지 않는다. 이에 의하면 서리는 무각평정건(無角平頂巾 : 모정이 평평하며 앞은 낮고 뒤는 높은 뿔이 없는 건)에 단령(團領)과 조아를 했고, 녹사는 유각평·건(有角平頂巾)에 단령·조아를 했다.

이에서 보면 서리와 녹사는 건에서 구별이 있을 뿐인데 실은 단령의 복색에도 차이가 있었다. 서리의 단령은 ≪조선상식 朝鮮常識≫ 풍속편에 보이는 단령이 “품직자 이외의 것은 대개 청(靑)이고, 다만 법사(法司)는 조(皁), 간원(諫院)은 토황(土黃), 공옹주(公翁主)의 배(陪)는 초록(草綠)이었다.”라고 하였듯이 청단령이었다.

녹사의 단령은 ≪속대전≫에 의하면 홍단령이었고, 대소 조의(朝儀) 때는 청현색 단령을 착용하였다. 그러나 이전에는 녹사도 청단령이 정식이었다고 추측된다. 그리하여 ≪대전통편 大典通編≫에 와서는 홍단령이 폐지되고 다시 청단령으로 돌아갔다. 또, ≪경국대전≫에 보면 사헌부 서리는 감제(監祭)와 조하시(朝賀時)에 공복을 착용하도록 되어 있다.

공복의 정식은 복두·포·대(帶)·홀(笏)·흑피화(黑皮靴)이니, 대와 홀에 있어서는 향리 공복과 같이 흑각대·목홀이었다고 하겠다. ② 외아전 : 외아전의 향리는 본래 지방의 호족이었는데, 고려 성종 때부터 지방 토착세력을 회유, 억제하려는 한 방편으로 이들에게 1품 이하의 향직을 주고 그 지위와 신분을 점차 억제하였다.

그리하여 고려 중기 이후 그 고역이 심하여져서 이에서 이탈하려고 애쓰게 되었다. 심지어 방립을 평시에 착용하게 하고 수령의 앞에서는 곡요(曲腰 : 허리를 굽힘.)를 하는 등 특수한 차별적 습속이 생기게까지 되었다. 이로써, 고려초 지방의 호족은 군아(郡衙)의 사용인과 같이 되고, 소위 아전계급을 형성하여 세습적으로 그 직책을 이어받아 왔다.

이들에 대한 복식의 규제는 고려 말부터 있어 처음은 백방립을 착용하게 하다가 평전두건을 쓰게 하였다. 조선시대도 태종 15년 향리·호장의 입제를 상정한 바 있었다. 즉, 호장·기관(記官)은 평정건(平頂巾)을, 통인(通引)·장교(將校)·역리(驛吏)는 두건을 쓰게 하되, 비나 눈이 오는 날은 유지모(油紙帽)를 쓰게 하였다.

관문 진퇴와 대소 사객(使客) 영송시 외는 흑색 죽감투[竹坎頭]를 쓰게 하였는데, 그 테두리의 너비는 2촌으로 정하였다. 다음해인 태종 16년 외방 주군(州郡)의 향리 관복에 대하여 예조에서 계(啓)하였다. 전수교(前受敎)에 향리가 관문 진퇴나 대소 사객 영송시는 평정두건을 쓰고, 상시(常時)는 감투를 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각사 이전(吏典)과 평인이 다르지 않아 기강이 서지 않으므로, 다시 방립을 흑칠하여 쓰게 하고 역리도 이에 따르기로 하였다. 이 흑칠방립은 그뒤 계속하여 향리들이 착용하였는데, 이를 쓰는 것은 자기네들뿐이었기에 싫어하여 임진왜란 후 서리사회에서도 이를 피하고 쓰지 않게 되었다.

≪경국대전≫에 기록된 향리복은 공복에는 복두·녹포·흑각대·목홀·흑피혜였고, 상복에는 흑죽방립·직령·조아·피혜였다.

참고문헌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통편(大典通編)』
『한국복식사연구』(류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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