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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관료 이종응이 영국 에드워드 7세 대관예식에 다녀온 후 1902년에 작성한 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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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관료 이종응이 영국 에드워드 7세 대관예식에 다녀온 후 1902년에 작성한 견문록.
내용

대한제국은 경축사절단을 파견했는데, 특명부영(赴英)대사에 이재각(李載覺), 수행원에 정3품 이종응, 예식원 번역과장 고희경(高羲敬), 참리관 김조현(金祚鉉), 외교고문에 인천주재 영국부영사 고프(H.Goffe, 葛福) 등 5명이다.

6월 26일 거행되는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에는 미·프·독·이·러 등 세계 56개국 사절단이 참석했는데 아시아에서는 한·청·일 3개국 뿐이다. 한국사절단은 4월 6일 서울을 출발, 일본 요코하마에 내려 주일공사 유찬(劉燦)의 주선으로 대관예식에 입을 예복(연미복)을 맞추어 입고 사진관에서 기념촬영한 후 캐나다 밴쿠버로 출항했다.

밴쿠버에서 대륙횡단 철도로 퀘벡 도착, 대서양을 횡단 6월 5일 영국 리버풀에 도착, 기차로 런던에 입성했다. 6월 26일 대관예식행사에 참석한 후 프·이·수에즈 운하·홍해·콜롬보(스리랑카)·싱가포르·홍콩·상하이·나가사키(長崎) 등지를 거쳐 8월 20일 인천에 도착 귀국했다.

이종은은 기념 메달을 받았는데, “26 June 1902 Edward Ⅶ”이라 새겨져 있다. 서사록이란 “서양에 배타고 갔다온 기록”이란 뜻이다. 작자 이종응은 매일 일기식으로 기록했는데 지명 인명은 한글로 기록했고, 양력일자를 쓰고 음력을 부기하고 있다.

4월 5일 서울에서 국서를 받고 고종황제에게 사폐(辭陛)한 날부터 8월 20일 인천으로 귀국할 때까지 4개월 반 총 136일간의 세계일주 항행 견문일기이다(1면 12행, 총 68쪽). 일기에서 이종응은 미국이란 국명을 일본식 ‘미국(米國)’대신 ‘미국(美國)’이라 기록했고, 기선 대신 화륜선(火輪船), 철도대신 ‘철로(鐵路)’로 표기하고 있다.

1902년은 러일전쟁 발발 2년 전이고, 을사조약 늑결(勒結) 3년 전이라, 일본의 침략 위협에 직면한 한국으로서는 자주독립을 유지하고, 충군애국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사절단을 파견하는데 외교적 노력을 경주했다. 이리하여 ‘8괘국기’를 뱃머리에 게양하고 영국사행을 수행, 에드워드 7세에 국서를 제정함으로써 주체성을 만천하에 과시한 것이다.

이종응은 서양과학기술의 경이로운 발달에 대한 ‘문화적 충격’을 기술하기를, “매번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부지런히 힘써 밤낮으로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마치 지극한 정성을 멈추지 않는 하늘의 도(道)에 견줄 만하다. 하늘이 하는 일(天工)을 사람이 대신 하는구나.”라고 감탄했다.

산업혁명이래 근대 과학문명의 상징도시 런던 거리의 번화한 모습을 보니 층루고각이 하늘높이 솟아 있어 수십 길 석벽이 연이어져 있는 것 같고 거리에는 사람의 어깨가 부딪히고 수레바퀴가 서로 닿으니 옛날 전국시대의 제(齊)나라의 서울 임치(臨淄)도 런던을 능가하지 못하리라고 적고 있다.

마침내 6월 13일 국서제정식이 버킹엄궁전에서 거행되었는데 궁전의 장엄한 규모를 보고 일찍이 맹자가 제나라왕의 거처를 보고 감탄했듯이 “크도다 거처여”라고 찬탄했다. 영국 국회의사당에서 만발한 토론 문화를 목격했고, 국립은행에서 관민 사이에 상호신용사회의 정착을 확인했다.

형무소의 교도행정에서 인간적인 ‘애민입법의 도(道)’가 시행됨을 보고 감탄했다. 이 밖에도 이종응은 시재가 뛰어난 시인답게 ≪서사록≫과는 별도로 한글기행가사 ≪서유견문록≫(총422행, 56쪽, 증손 李海石 소장)을 남겼다.

“순풍에 높은 돛대/팔괘국기 달았구나”라고 노래하면서 태극기를 뱃머리에 높이 게양하고 의기양양 영국사행을 했음을 찬양하고 있다. 버킹엄궁전의 화려한 건축양식에 대해 “굉걸하고 웅장하다/천만칸 대하(大廈)로다/통창(通暢)하고 빛난 마루/화초문을 놓았도다/물결같은 양탄자를/운치있게 깔아있고/비단 도배 황홀한대/사이 사이 도금이요”라고 노래했다.

대관식 경축 불꽃놀이가 있었는데, “일성 포향 나는 곳에/신기전(神機箭)이 올라간다/산악을 흔드는 듯/강하가 끓는 듯이/예서도 탕탕/제서도 탕탕”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서유견문록≫은 20세기초 외교사절단으로서는 최초의 ‘한글 기행가사’로서 가사문학 연구에 귀중한 문헌이다.

집필자
김원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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