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에서 주인과 마주앉는 사람 사이에 놓여 주인이나 윗사람으로서의 위치를 지켜주는 구실을 한다. 서상(書狀) · 서탁(書卓) · 궤안(几案)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연상(硯床)을 따로 곁들여 쓰는 것이 상례이다.
종류로는 일반적으로 서안이라 불리는 책상형(冊床形), 판의 양끝이 위로 말려 올라간 경상(經床), 이층농 형식을 가지고 있어 머릿장 · 문갑 · 서안 등의 다목적 용도로 쓰이는 책상문갑형이 있다.
19세기 이전의 서안은 유품이 희귀하여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며, 다만 낙랑고분에서 출토된 절첩각(折貼脚)의 목제 서안, 부여에서 출토된 청동제 수형안각(獸形案脚), 고려시대 유물인 청동 경상이 남아 있어 옛모습을 짐작하게 하여줄 뿐이다.
또한, 고려 말기의 나한도(羅漢圖)나 조선시대 풍속화 및 초상화 등에도 책상들이 그려져 있어 당시 서안의 형태를 고찰하는 데 참고가 되고 있다. 이들은 고격이 있는 제상(祭床) · 향탁(香卓)과 매우 비슷한 짜임새로, 위판이 평판이며 다리의 붙임이 단순하다.
19세기 이전 조선시대 오래된 문인의 책상으로 안동 도산서원에 전하고 있는 서안을 볼 수 있다. 천판의 짜임이 조선후기 일반적인 양식과 다르고, 풍혈은 중국 명식(明式) 가구와 흡사하여 조선후기와는 구별되는 형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 이후의 서안은 재료 · 형태 · 크기 등이 일정하지 않다. 이는 재래 목공예품이 다 그러하듯이 각기 집안용으로 제작되어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로가 길고 너비가 좁으며 때때로 변죽을 치켜올리기도 하는 기본적인 형태는 같아, 취향에서도 조선시대 선비의 학자적인 고결함이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 및 서유구(徐有榘)의 『이운지(怡雲志)』에서도 서실용의 가구다운 품격을 위하여 특기할 사항으로, 나뭇결이 좋은 문목(文木)을 즐겨 취하되 단단하고 정갈한 판자로 하며, 하장(下裝) 부분에 운각을 새기거나 붉은 칠을 하는 등 번다한 치장을 피하여 소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문목을 취한다는 것은 옻칠조차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인두로 지지거나 향유로 닦아 고담하게 만드는 문방구의 일반적인 특성과 일치한다. 목재는 제주도의 산유자나무, 호남의 먹감나무, 황해도 대청도 일대의 해묵은 뽕나무를 꼽으며, 기록에 따라서는 비자나무 · 느릅나무 · 물푸레나무 등이 좋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