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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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
단체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발생한 신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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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선도교는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발생한 신종교이다. 선도교라는 명칭의 교단에는 고판례의 선도교, 안내성의 선도교(혹은 증산대도교), 여처자의 선도교(후의 모악교) 등이 있다. 증산교의 창시자 강일순의 사후에 그를 추종하던 부인과 제자들이 신종교를 세웠다. 그의 부인이었던 고판례는 정읍에서 선도교(또는 태을교)를 창설하였다. 강일순의 제자였던 안내성은 1913년 여수에서 선도교를 설립했다. 보천교를 탈퇴한 증산교 신도들이 모여들자 교명을 증산대도교로 바꾸기도 하였다. 보천교 신도였던 여처자는 1946년 김제로 이사하여 선도교를 창설하고 포교 활동을 하였다.

목차
정의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발생한 신종교.
내용

선도교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교단에는 고판례(高判禮)의 선도교, 안내성(安乃成)의 선도교(혹은 증산대도교), 여처자(余處子)의 선도교(후의 모악교) 등 최소한 세 개가 있다. 이들은 각기 별개의 종단이지만 모두 증산교(甑山敎) 계열에 속한다.

고판례의 선도교는 증산교 여러 종파 중 가장 먼저 세워진 종단을 일컫는다. 증산교의 창시자 강일순(姜一淳:호는 甑山)이 사망하자 그를 따르던 추종자들은 모두 흩어졌는데, 그의 부인이었던 고판례가 1911년 강일순의 생일날 치성을 드리다가 졸도한 후부터 신력(神力)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평소의 강일순과 비슷한 모습과 행동을 하며 치병을 잘한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자, 강일순의 추종자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이종사촌이며 후일 보천교를 세운 차경석(車京石)의 집이 소재한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대흥리에서 교단 창설을 선포하고 포교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때 교단의 명칭은 선도교 또는 태을교(太乙敎)라 하였다.

그 후 차경석이 그녀와 신도들간의 접촉을 차단하고 교권을 장악하자, 그녀는 1918년 차경석과 결별하고 전북 김제군 백산면 조종리로 장소를 옮겨 태을교라는 별도의 종단을 세웠다. 따라서 선도교란 고판례와 차경석이 교단을 분리하기 이전의 교단을 말한다.

1931년 고판례는 교단 관리를 강응칠(姜應七)에게 넘겨주고 증산교의 또 다른 종파인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용화동에 소재한 이상호(李祥昊)의 동화교(東華敎)로 옮겨가 통합종단을 형성하여 조직과 체계를 강화시켰다.

따라서 고판례의 활동은 차경석과 지내던 선도교 시절과, 자신이 독자적으로 활동하던 조종골 시절, 그리고 이상호와 활동하던 동화교 시절의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조종골 교단은 그 후 몇몇 종단으로 다시 분파되거나 오랜 동안 단절되기도 했으며, 1980년대 중반에 다시 재조직된 이후에도 특별한 날에 얼마 안되는 신자들이 모여 치성을 드리는 정도로 미미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안내성의 선도교는 1913년 세워졌다. 강일순의 제자였던 안내성은 고판례가 선도교(태을교)를 설립할 때 참여했으나 차경석과 뜻이 맞지 않자 전라남도 여수읍 가국리에서 별도로 교단을 설립했다.

1927년에는 전북 전주군 우림면 청도리 백운동으로 본부를 옮겨 전국에 있는 신도들을 모아 교인촌을 형성하였다. 1927년 보천교를 탈퇴한 많은 증산교 신도들이 모여들자 한때 교명을 증산대도교(甑山大道敎)라 바꾸기도 하였다.

1949년 안내성이 사망하자 노장파와 소장파 그리고 오동정이파로 분립되기도 했었다. 현재는 이들이 하나의 종단으로 합해졌지만, 교세는 몇 십 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 종단의 3대 종지(宗旨)는 시봉천지인삼신(侍奉天地人三神) · 통솔선불유삼도(統率仙佛儒三道) · 일심성경신삼자(一心誠敬信三字)이다.

시봉천지인삼신이란 하늘에 있는 상제(上帝)와 땅의 후토(后土)와 인계(人界)의 선영(先靈) 등 삼신을 받드는 것을 말한다.

통솔선불유삼도란 유불선(儒佛仙) 삼도의 기운을 체득하는 것으로 선도로 심령을 수련하고 불도로 육체를 양성하며 유도로 범절을 이행하게 하는 것을 말하고, 일심성경신삼자란 성경신(誠敬信) 석 자를 힘써 행하고 기도와 인도(人道)의 이행에 전력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종단에서는 신도들이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행동규범을 의미하는 팔조수행요목(八條修行要目)을 제정하고 있다. 그 내용은 수도포덕(修道布德) · 신인합덕(神人合德) · 거병해원(祛病解寃) · 안심안신(安心安身) · 강기불난(綱紀不亂) · 구령송사(救靈送死) · 정치불범(政治不犯) · 산업근무(産業勤務) 등이다.

여처자의 선도교는 보천교 신도였던 여처자가 세운 종단으로 모악교(母岳敎)의 전신이다. 보천교가 큰 세력을 나타낼 때 신도들 사이에 신력을 가진 것으로 소문났던 여처자는 차경석이 경상남도 함양군에 소재한 황석산(黃石山)에서 천제(天祭)를 지낼 때 자신과 혼례를 올리고자 하는 것을 알고 피한 다음, 1937년부터 신도들을 규합하여 포교활동을 시작하였다.

1946년, 그녀는 전북 김제군 금산면 계룡리(용화동)로 이사하여 선도교라는 교명으로 적극적인 포교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1953년 그녀가 사망한 후 선도교는 여러 종단으로 분리되었으며, 용화동 본부는 모악교로 개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증산교개설』(홍범초, 창문각, 1982)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한국민족종교총람』(사단법인 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류병덕·양은용,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한국신종교대사전』(김홍철, 모시는사람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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